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가곡(전북)

작품/자료명
가곡(전북)
전승지역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
지정여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
구분
정악
개요
<가곡(歌曲)>은 시조시(時調詩)를 관현반주(管絃伴奏)에 얹어 5장형식(五章形式)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가곡>의 원형은 고려가요에서 생겨난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고, 이는 속도의 구분인데 느린 곡인 <만대엽>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이전에 없어졌고, 중간 빠르기의 <중대엽>도 조선 후기에는 부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가곡은 조선 후기부터 나타난 빠른 곡인 <삭대엽>에서 발생한 것으로 가락적으로 관계가 있는 여러 곡들이 하나의 노래모음을 이룬다.
내용
<가곡>은 전문가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예술적 가치가 큰 음악으로 전라북도에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전주시에 사는 한양수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승자 정보
한양수(1921.2.21~ )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歌詞)>의 보유자였던 이주환(李珠煥)의 뒤를 이은 정경태(鄭坰兌)의 문하에서 시조와 가곡을 사사받았으며, 또한 예능보유자의 문인(門人)이던 송창섭(宋昌燮)과 고민순(高敏順)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남창가곡>과 <시조>, <가사>에 두루 능하다. 1958년 제9회 진주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에서 시조부 수석을 하였고, 1974년에는 제15회 전라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에는 제9회 전국고수대회 명고부(名鼓部) 대상을 수상하였다. 후진양성 및 전주대사습놀이 시조부 심사를 맡고 있다. 한양수는 <초수대엽>부터 일정한 순서에 의하여 <태평가>까지 한꺼번에 부르는 연창 형태를 드물게 간직하고 있다. <우조초수대엽>부터 시작해 <우조이수대엽>, <우조중거>, <우조평거>, <우조두거>, <우조삼수대엽>, <우조소용이>, <반엽>, <계면초수대엽>, <계면이수대엽>, <계면중거>, <계면평거>, <계면두거>, <계면삼수대엽>, <계면소용이>, 언롱>, <평롱>, <계락>, <우락>, <언락>, <편락>, <편수대엽>, <언편>, <태평가>로 진행되는 남창가곡 26곡을 비교적 자세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의 음악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남창가곡>과 함께 <판소리고법>에도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전국고수대회에서 명고부 대상을 수상할 정도의 뛰어난 북가락을 보유하고 있다. 취미로 배운 북솜씨지만 <남창가곡>에 이러한 고법을 삽입해 나름대로 독창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된다. 따라서 그의 <남창가곡>에는 중앙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음악어법이 스며있다. 특히 그는 가곡은 목소리로만 내는 것이 아니라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가곡의 연주는 그 앉음새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져서는 안되는데 얼굴은 온화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손목은 무릎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머리를 흔들거나 곁눈질 따위를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용이>부터 그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하여 <언롱>쯤으로 들어가면 으레 완전히 달라진다. 이 때쯤 되면 갓끈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계락>, <우락>, <언락>으로 내려가면 저절로 일어나는 흥에 무릎을 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지막 <태평가>에 이르러서는 다시 엄숙한 분위기로 돌아가 처음의 근엄하던 자세로 시치미를 뗀다. 이와 같이 한양수 가곡의 가풍과 구성은 선비들이 생활과 품격에 그대로 맞춤한 음악이 투영되어 있다. 그의 창법은 대개 <시조>, <가사>의 창법과 비슷한데, 통소리를 쓰는 민속음악에 비하여 횡경막을 밀어 올리는 복식호흡에 의한 창법을 쓰고 있다. 이것을 한양수 자신은 뒷목을 쓴다고 표현한다. 매우 꿋꿋한 느낌에 어느 음역에서 소리를 낼 때에도 음색을 달리하지 않는 것이 특색인데 <가사>와 <시조>가 속소리를 쓰는 데 비하여 <남창가곡>에서는 전혀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연계정보
· 관련도서 <전북국악사>, 황미연 · 관련사이트· 관련가치정보
연계정보
-가곡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멀티미디어(전체0건)
이미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