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이철호 (1938.4.15~)

예술가
이철호 (1938.4.15~)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87.7.1 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 구례향제줄풍류 이수자 선정 1988.8.1 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 구례향제줄풍류 조교 선정 1996.9.10 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 구례향제줄풍류 보유자 인정
학력(계보)
1956.~1958. 전용선에게 사사 1973.~1983. 김무규에게 사사 1987.7. 일반전수자로 자체공개 시 이수평가 받음
생애(약력)
1982. 한국방송공사 합동발표 1983. 원불교 중앙 총부에서 합동발표
리뷰
풍류의 참맛 오늘에 되살린다. ‘풍류(風流)’란 우리말 속에서 상당히 넓은 의미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말이다. 최치원은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그것이 곧 풍류도라는 말을 했다. 화랑의 수련과 인격도야 항목으로도 풍류란 말은 여기저기 끼어 들었다. 풍류란 그러니까 이치로 풀면 철학이요 종교가 되고 소리로 풀면 춤과 무예가 되며 거기서 우리의 멋과 맛의 용어가 나왔다. 향제줄풍류란 지방에 전승되는 영산회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음악에서 풍류는 흔히 거문고 가야금 같은 우리의 오랜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줄풍류와 향피리, 젓대와 같은 역시 우리의 전통이 오랜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대[竹]풍류로 구분된다. 이런 유의 음악은 풍류방에서 율객들이 연주해 온 우리 전통음악의 큰 맥이다. 역사도 오래고 예술성도 높다. 무형문화재 제83호 구례향제줄풍류의 단소 이수자이며 전수조교인 이철호(53)씨는 그 오래고 깊은 소리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옛 재주를 이어 새 재주를 길러가는 오늘의 풍류객이다. “구례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학교에서 예술제가 있었습니다. 단소의 명인이고 구례줄풍류의 어른이신 백경 김무규 선생이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예술제 연극을 하는데 모든 효과음악과 효과음을 선생님이 혼자 단소로 다 만들어 내시는 거예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고 멋이 있었습니다.” 풍류(음악)에서 풍류(멋)를 느낌 소년의 첫 감격이었다. 이 감격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가 단소를 배우기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줬다. 그가 만난 첫 스승을 추산 전용선 선생님. 추산은 단소·젓대·양금·피리·해금·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그의 단소 산조는 전무후무라는 전설적인 평가를 받는 명인이다. “아버님은 한약방을 하시면서 거문고를 좋아하셨죠. 집에는 늘 음률을 좋아하시는 어른들이 드나드셨어요. 내가 단소소리에 감격을 안고 있을 때 추산선생님이 우리 집에 묵고 계셨어요.” 고등학교 1학년짜리 어린 제자는 3개월만에 줄풍류의 단소 전곡을 모두 떼어 총기있고 재주있는 어린 제자로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은 체육과를 들어갔고 거기서 권투선수로 훈련을 받아 전국대회 선수권을 획득한 1959년부터 1964년 동경올림픽까지 국가대표 선수단의 일원으로 확약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소를 부는 권투선수였고 백경 김무규선생을 모신 단소의 학도였다. “백경선생께는 20년 제자고 이제는 줄풍류 조교로 어른들 틈에서 공부하며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그의 공부는 이제 상당히 깊고 넓어졌다. 스스로 좋아해서 배우고 지켜왔다지만 그는 그의 지금의 모습을 아버님의 풍모에서 그 뿌리를 찾아낸다. 그 뿌리 그 줄기는 지금 그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광주 수피아여고 3년생인 맏딸 소영은 거문고를 타고 둘째 문영은 국악고교 거문고 전공생이며 셋째 가영은 구례중 1학년에 단소를 배운다. 국민학교 3년생인 아들 세원은 아직 아무 관심이 없지만 그 역시 모를 일이다. 그의 아내 손숙정(42)씨는 국악은 직접 하지 않아도 온 집안의 음률 속에서 이해하며 산다. 권투선수경력이 드러나는 큼직한 허우대에 문약하지 않은 모습처럼 그는 든든하게 옛 가락을 지키는 강건한 오늘의 율객이다. <일간스포츠>, 구히서, 1990년 11월 10일
연계정보
관련가치정보
연계정보
-영산회상(靈山會相)
관련멀티미디어(전체0건)
이미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