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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갑득 (1919.12.12~1987.9.28)

예술가
한갑득 (1919.12.12~1987.9.28)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시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78.2.20.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인정 1987.9.28.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사망해제
리뷰
거문고 산조 한갑득 명인 한갑득 명인은 1919년 12월 12일 전남 광주시 수기동 59번지에서 태어났다. 누대 음악인의 집안으로 할아버지 덕만씨는 대금과 가야금의 명인이었고, 아버지 성태씨 또한 판소리의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아들의 나이 열 두살 때 세상을 버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뜰 무렵, 어린 한갑득은 안기옥에게 찾아가 서너 해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안기옥은 1905년 전남에서 태어나고, 가야금 산조의 비조라 할 수 있는 김창조에게서 가야금 산조를 배웠는데 이를 정남희ㆍ한갑득ㆍ성금연 등 제자에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한갑득이 전공을 가야금에서 거문고로 돌린 것은 거장 신쾌동이 공연 차 광주에 왔을 때 우연히 그의 거문고 산조를 듣고서의 번의요, 발분이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 때 처음으로 거문고 산조를 들었는디 어린 마음에도 참 좋아. 가야금 산조를 몇 년 배웠고 또 어려서부터 음악에 젖어 살아왔으니 어렸다고 해도 이미 귀는 뚫려 있었거든. 그런디 들어보니 참 좋아, 가야금 산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씩씩하고 남자답고 깊고 무거운 맛이 울려 나온다 말이여. 그래서 거문고를 배울라고 여기저기 알아보니 창평에 사는 박석기라는 사람이 거문고를 잘 한대. 그래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창평까지 오십리길을 달려갔지.”(1) 한갑득의 나이 열 다섯, 그는 마음도 급히 담양군 창평면 유곡리로 박석기를 찾아 달려간 것이다. 박석기는 전남 창평 출신으로 거문고 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백낙준에게서 거문고 산조를 전수받아 이를 다시 한갑득에게 전수한 것이었다. 박석기는 창평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 건너가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수재이며 세계올림픽에 야구선수로도 출전한 유능한 운동선수이기도 했다. 천성이 음악을 좋아해 백남준을 창평으로 초빙하여 대우를 극진히 하고 거문고 산조를 배웠으나 연주활동은 하지 않고 제자에게 전수만 시켰다. “그 양반이 생기기도 잘 생기고 마음도 넉넉한 사람이여. 내가 한성태씨 아들인디 거문고를 배우러 왔으니 가르쳐 주시요 하니 두말 없이 가르쳐 주겠다고 하더구만. 그날부터 그 집에서 먹고 자고 배우는디 그 때 박동실 명장한테서 김소희ㆍ박초월ㆍ한애순이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고, 악기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렸어.”(2) 박석기에게서 거문고 산조 전바탕과 풍류(줄풍류)와 가곡을 고루 배웠다. 풍류는 다스름에서 우조ㆍ계면ㆍ굿거리까지이며 가곡은 우조 첫치(초수대엽)에서 편편락까지 그리고 산조는 진양ㆍ중모리ㆍ엇모리ㆍ자진모리까지 배웠다. 박석기에게서 산조를 배울 때 중중모리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스승 박석기에게서 서문고 산조와 정악수업을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한갑득은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온다. 그의 나이 스무살이었다. ‘조선성악연구회’의 회원, ‘조선창극단’의 기악부원으로 그의 연주활동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한갑득의 행운이기도 하지만 그의 빼어난 거문고의 기량이 능히 그 자격을 얻고 직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니 가히 자랑스럽다고 이를 것이다. ‘조선성악연구회’는 남도창의 중진ㆍ중견들로 1933년 조직되었는데 이것은 광무년간 ‘협률사’에 기원을 두는 것이다. 1936년에는 창극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직속극단인 ‘창극좌’를 조직하고 그 단원을 성악연구회 회원으로 구성하였다. 이 무렵 한갑득은 박보아와 결혼을 하게 된다. 박보아의 본명은 진심. 진도의 이름난 소리꾼 박동준의 맏딸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소리를 배우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성악연구회’에서 송만갑ㆍ정정렬 등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여류 신예로 장래가 촉망되었는데 한갑득의 발빠른 구애와 박보아가 이에 기꺼이 화응해 부부가 된 것이었다. 박보아 여사는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여 주로 지방공연을 했고 1948년 박녹주ㆍ박귀희ㆍ김소희 등 여류 창악인을 중심으로 ‘여성국악동호회’가 결성되자 여기 가담하여 활동했고 그 뒤 ‘삼성 여성국극단’을 창단하여 대표가 되고 <옥가락지> 등 작품에 주역을 맡아 인기를 얻었다. “해방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국극 단체가 생기더란 말이여. 그래 우리도 ‘삼성국극단’을 만들었지. 마누라의 동생 그러니까 내 처제가 박옥진이라고 소리 잘하고 연주도 잘했거든. 그래서 박보아ㆍ박옥진 그리고 한갑득 이렇게 세별이 모였다고 해서 ‘삼성국극단’이라고 이름을 붙인기여. 나는 반주도 해주고 작곡도 해주고 단체 운영도 하면서 같이 다녔지.” (3) 한갑득 명인은 1969년 3월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거문고과 강사로 위촉되어 1972년 2월 학년말까지, 그리고 동년 3월 새로이 ‘국립국악원’ 장악과 연주원으로 임명되어 1978년까지 근무하다가 신병으로 부득이 자퇴하게 된 것이었다. ‘국악사양성소’ 출강 때 과시 거문고 산조의 거장답게 성실과 애정으로 자신의 절예를 도저히 전수하고, 제자들도 우러르는 스승의 뛰어난 교도에 경의와 전심을 기울여 잘 순응해 기량과 진도 함께 올라갔던 걸로 나는 이날 그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한갑득은 나이들며 20세 약관시절의 화려하던 연주활동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당대의 여류 명장 ‘이화중선 창극단’의 일원으로 일본 공연에 참가한 일이며 오케이 레코드사의 유혹으로 명창 김연수 등이 판소리 <심청가> 전판을 녹음하는데 거문고 반주를 다한 일 등이 그것이다. 그 말고도 또한 오케이판에 <흥보가>를 녹음했는데 이른바 입체창의 형식으로 놀부역 오수암, 놀부처 이화중선, 흥부역 임방울, 흥부처 김록주 등 어디 비류가 없는 황금 배역의 창극 <흥부전>에 한갑득은 거문고로 극적 효과를 배가시켰다고도 했다. 한갑득 명인은 1978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사조 기ㆍ예능 보유자로 인정된다. 1967년 6월 신쾌동이 첫 거문고 산조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되고 10년만에 일이니 두 사람의 나이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조금은 늦은 인정을 아쉬워 할만하다. 그것도 신쾌동 가고 없을 후였다. 그래서 그런가는 몰라도 그는 곧 잘 보유자 지정에 조금은 불편한 심기를 꺼리지 않았다. “문화재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여. 쌀 한가마니 사고 나면 싹 없어지는 돈 조금 주면서 별별 귀찮은 일은 다 시켜. 말이 좋아 인간 문화재지 사는 꼬라지는 인간 쓰레기여. 문화재 대우를 할라면 먹고 살게 해주어야 할거 아녀. 내가 어떤 때는 챙피허고 서러워서 이 길로 들어선 게 허망스럽고 죽고만 싶어. 이젠 거문고 소리 알아 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 (4) 거문고 산조의 쌍벽을 이르는 신쾌동, 한갑득 두 명인의 특징을 평이하고 간명하게 묘파한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쾌동류는 백낙준가락을 가장 많이 모방한 가락이다. 그러나 이 가락은 섬세한 농현과 복잡한 리듬을 구사하여 초기의 산조를 세련되게 다듬는데 특색이 있다. 한갑득류는 기존 가락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비교적 다른 가락을 모방하지 않고 독자적인 새로운 가락을 개발한 점이 특색이다. (5) 이를 뒷받침하듯 한갑득도 같은 말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요새는 문화재 지정이니 뭐니 해서 선생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여. 선생한테는 기본 가락을 배우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지 재주껏 편곡도 허고 창작도 해서 타야 좋지……. 어떻게 가락을 잘 만들어서 듣는 사람의 심정을 건드려 주나 허고 끊임없이 연구를 허니 가락이 한정이 없어. 수시로 변해. 공연 때마다 다르고 켤 때마다 달라…. 그래서 산조가 어려운 서고 그래서 산조가 좋은 거여.” (6) 그것은 저마다 되는게 아니고 한갑득 같은 명인 거장이라야 능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갑득 명인은 1987년 9월 28일 숙환으로 서울 혜화동 고려대 부속병원에서 서거하니 향년 69세였다. (1)거문고의 명인 한갑득 음악동아 1985.11. (2)거문고의 명인 한갑득 (3)거문고의 명인 한갑득 (4)거문고의 명인 한갑득 (5)민속예술사전 “거문고 산조”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9 (6)거문고의 명인 한갑득 <음악동아>, 198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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