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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산 (1954.10.10~)

예술가
이부산 (1954.10.10~)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80.12.31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삼천포농악 이수자 선정 1992.7.1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삼천포농악 조교 선정
학력(계보)
1974.1. 농악대 입문 1975.3. 문백윤에게 사사
생애(약력)
1974.10. 제1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삼천포농악 문화공보부상 수상 1974.12.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 연기상 수상 1976.3. 제14회 전국농악대회 농악부 특기상 수상 1981.5. 중앙발표공연 매년 출연 1983. (사)한국국악협회 부산시지부농악분과 위원장 역임 1986. 제31회 태평양영화제 특별공연 1987. 월드컵대회 시상식 특별공연 1988. 캐나다'88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및 수상식 특별공연 1988.10. 전라예술제 대통령상 수상 1989. 북미주 13개주 순회공연 1990. 일본 10개도시, 미주5개 도시 순회공연 1991. 프랑스세계민속음악페스티벌 대상 수상 1994.6. 감사패(panang) 수여 1995.12. 제3697부대 위문공연 감사패 수여 1997. 뉴질랜드, 피지, 말레이시아, 태국 순회공연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 초청공연 1999.10. 전국국악대전 타악부분 최우수상 수상 2002.10. 제13회 진주삼천포농악 지방발표회(진주성 야외무대) 2003.5.27~6.11 미주 한인이민100주년 기념공연(미국워싱턴 등 5개 도시)
리뷰
설장고로 이름을 떨치는 명인이 수도없이 많지만 이부산은 좀 색다른 점이 있는 설장고 명인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부산의 설장고 솜씨를 보면 전립을 쓰고 채상모짓을 하며 박진감있게 덩덕궁이 가락으로 돌아가는 점은 영남의 진주ㆍ삼천포 설장고임에 틀림 없지만 잔가락이 아기자기한 점은 호남우도 설장고의 멋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부산의 학습 내력을 뜯어 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이부산이 한때 진주에 머물렀고 지금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가 자란 곳은 전라북도 김제이다. 김제가 어디인가. 호남우도농악의 중심지가 김제, 정읍, 고창이고 보면 그가 자란 김제는 분명 풍물고장이 아닌가. 그의 부친이 김제에서 유명한 백구농악의 상쇠도 맡고 설장고도 쳤던 이준용이다. 6세 어린 나이에 이부산이 부친에게서 설장고를 배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부친에게서 장고를 익혀 농악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이부산은 13세 무렵에 호남우도 농악 설장고로 경향에 이름을 떨치던 김병섭을 스승으로 모시고 설장고 개인놀이를 익히게 된다. 20세 성인이 되어서 그는 설장고로 이름을 떨쳐 각처를 떠돌게 되고 그가 간 곳이 진주근방에서 떠들썩하던 상쇠 문백윤 행중에 든 것이다. 당시에 농악으로는 유일하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진주ㆍ삼천포 농악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장고 솜씨하면 문백윤이 그의 행중에 끼워주고 남았을 것이다. 그가 진주ㆍ삼천포 농악의 전수생이 되었고, 문백윤에게 영남지역 장고놀음과 쇠가락을 배운 것도 이 때이다. 오늘날 흔히 보이는 설장고는 호남우도 농악의 설장고가 그 조종이 되는 것이지만, 설장고는 각지로 퍼져 그 지역 특성에 따라 설장고가 새로 짜지고 지역 명인들도 많이 나게 되지만 진주ㆍ삼천포에도 조명수, 김도생, 송철수와 같은 명인들이 뒤이어 나왔다. 이부산이 이런 전통을 이었으니 호남우도 농악 설장고와 영남농악 설장고를 익히게 된 것이다. 이부산은 이제 무형문화재 진주ㆍ삼천포 이수생이 되었고 조교로 인정되었다. 각종 농악공연에 참가하였고, 그가 공연한 농악팀이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많이 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두레패 사물놀이에서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제2회 문화재보호재단 농악명인전(서울놀이마당) 프로그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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