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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1952.8.25~)

예술가
김선옥 (1952.8.25~)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80.12.31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삼천포농악 이수자 선정 1991.5.1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삼천포농악 보유자 후보 선정 2000.8.22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삼천포농악 보유자 인정
생애(약력)
2002.10. 제13회 진주삼천포농악 지방발표회 공연(진주성 야외무대)
리뷰
황일백상쇠가 이끌던 당시 진주농악에서 첫손을 꼽던 채상소고잽이가 있었으니 김선옥이라는 소년이었다. 그가 다드래장단에 연풍대로 자반뒤기로 돌아가면 벌 날 듯 하였다. 그가 지금 <진주삼천포농악>의 상쇠를 맡고 있지만 그가 소고의 명인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김선옥은 진주 근방에서 태어났고 집안 어른 가운데 농악에 밝은 명인들이 있어 일찍 소고를 잡았는데, 외조부 되시는 강두금 어른에게 소고놀이를 배운 때가 6세였다니 조숙도 하였다고 하겠다. 어른들을 따라 뜬패, 즉 전문적인 농악대를 수행하였는데 10세 무렵에는 같은 단원이었던 윤판옥, 조판조와 같은 명인들의 지도를 받고 자랐다. 그 무렵에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개인상을 여러 차례 받았던 경력이 그의 학습력을 증명하고 있다. 15세 무렵부터는 농악의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눈을 뜨게 되고 따라서 당시 <진주삼천포농악>을 이끌던 황일백, 문백윤과 같은 상쇠의 기예를 익힐 수가 있었다. 1970년대 들어서 황일백, 문백윤 등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주·삼천포 상쇠 기예능보유자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이 종목을 이끌어 갈 상쇠가 문제였고, 김선옥이 나서서 이 종목의 상쇠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 황일백, 문백윤의 문하에서 오랫동안 공연활동을 벌였으며 익혔던 경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진주삼천포농악>의 전승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다. 그는 수많은 농악경연대회에 참가하였고 그가 참가한 단체가 최고상을 수상한 적이 많지만 그가 지금 자부하는 것은 <진주삼천포농악>을 단절시키지 않고 이어오고 있는데 헌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의 그런 노력이 인정되어 199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진주·삼천포 농악(12차 농악) 상쇠로 기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즉, 속칭 준 인간문화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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