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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놀이

작품명
나락놀이
구분
1980년대 초중반
작품소개
<나락놀이>는 일제 시대의 농민운동인 신안군 암태도 소작쟁의를 극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 일본경찰과 지주의 밀착, 재판장에서의 농성 등으로 전개된다. 1980년대 초반 별다른 문화운동이 없던 목포에서 김빌립, 김영인 등이 모여 극단 민예를 창단하고 창단공연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당시 극단 민예의 단원들은 직접 현장을 답사하고 지역주민들의 증언을 수집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 작품을 공동창작했다.
작품내용
[첫째 마당] 첫째거리(재판거리) : 일본인이 마름의 안내를 받으며 등장하여 농민들을 윽박지른다. 농민들은 과도한 소작료(지주:소작인 = 8:2)를 견디다 못해 소작회의를 조직한다. 일본인 판사는 농민들에게 중형을 내린다. 잽이가 1923년 암태도의 소작쟁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농민들은 전국적 추세에 맞도록 소작료를 낮추기 위해(지주:소작인 = 4:6) 다 익은 나락을 추수하지도 못하고 배를 곯고 있지만 지주와 마름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버틴다. [둘째 마당] 첫째거리(쪽바리거리) : 1910년 토지조사 당시의 모습. 일제는 토지소유를 신고하라 공표하고 제도에 밝지 못한 농민들은 토지를 몰수당한다. 일본상인은 양은요강, 눈깔사탕 등 일본 제품들을 비싸게 팔아먹기도 한다. 거지, 소매치기 노릇을 하던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넘어와 한몫 잡는 사이 농민 대부분이 소작인으로 전락한다. 둘째거리(엽전거리) : 소작료 싸움으로 나락에 여유가 생긴 농민들이 쌀을 걸고 노름을 한다. 이를 본 다른 농민과 노름 농민들 사이에 싸움이 난다. [셋째 마당] 첫째거리(작료거리) : 마름이 농민들의 집을 하나하나 돌며 소작료 7할을 빼앗아가려고 한다. 농민들이 저항한다. 둘째거리(송덕비거리) : 농민들이 대회를 열고 송덕비를 부수며 소작료 인하를 주장한다. 많은 농민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모두들 목포 경찰서로 석방운동을 하러 가기로 한다. [넷째 마당] 첫째거리(경찰서거리) : 농민들이 목포 경찰서로 쳐들어가 경찰서 앞마당을 차지하고 농성을 시작한다. 일본인 경찰들은 당황한다. 농민들은 경찰서 마당에 똥을 싸놓는다. 둘째거리(재판소거리) : 경찰서 농성을 풀었는데도 구속자들을 석방하지 않자 농민들은 단체로 단식에 들어간다. 결국 지주는 소작료를 낮추기로 하고 농민들은 승리한다.
출연/스태프
스태프 작/공동창작 연출/김빌립
예술단체
극단 민예 광주, 전남지역의 민족극을 대표하던 극회 ‘광대’가 해체되고 난 뒤, 목포 YMCA가 주최한 탈춤강습회에서 ‘광대’ 회원이자 교사인 김빌립과 대학생들이 만나게 된다. 이들이 극단 ‘민예’를 창단함으로써 목포 지역의 마당극 운동이 시작된다.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된 극단 ‘민예’는 1981년 창단공연으로 <나락놀이>를 무대에 올리지만 곧 침체기를 맞고 1985년 봄 <어부놀이>의 목포, 광주 공연을 끝으로 해체된다. 그러나 극단 ‘민예’는 이후 목포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인 놀이패 ‘갯돌’과 놀이패 ‘어울림’의 초석이 된다.
비평
(……) ‘민예’는 81년 여름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기능 훈련과 함께 창립공연 준비에 들어가는데, 목포지역 역사 속에서의 소재인 일제하 암태도 주민들의 소작쟁의를 선택하여, 수 차례에 걸친 현장답사와 자료연구,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공동창작으로 대본을 구성하여 연습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81년 9월 마침내 마당굿 <나락놀이> 공연을 성공리에 치름으로써 ‘민예’의 마당굿 운동은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게 된다. (……) - ‘광주·전남지역의 마당굿운동에 대하여’, 박영정, <전라도 마당굿 대본집>, 놀이패 신명 엮음, 들불, 1989
관련도서
<전라도 마당굿 대본집>, 놀이패 신명 엮음, 들불, 1989
연계정보
-돼지풀이
-호랑이놀이
관련사이트
극단 갯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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