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호랑이놀이

작품명
호랑이놀이
구분
1980년대 초중반
작품소개
<호랑이놀이>는 1981년 5월 9일 극회 ‘광대’에 의해 공연됐다. 이 작품이 공연된 YMCA 무진관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인 금남로에 있다. <호랑이놀이>는 해방 이후부터 5·18까지 현대 정치사를 다루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기념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호랑이놀이>는 한반도에 대한 제국주의의 침략과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코커국이 만만국을 침략하는 과정으로 은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특히 박지원의 소설 <호질>을 기본틀로 하여 웃음을 통한 날카로운 사회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훗날 놀이패 ‘신명’의 재구성으로 1987년 <호랑이놀이 2>로 재공연되기도 했다.
작품내용
[첫째 마당] 첫째거리 - 코커국의 호랑이와 졸개인 분귀, 금귀, 전귀가 만만국의 모든 것을 잡아먹을 궁리를 한다. 오랫동안 만만국을 지켜왔던 팥죽할멈, 깽쇠, 포수가 호랑이 일당을 위협한다. 그러나 팥죽할멈 일행은 힘이 딸린다. 둘째거리 - 전귀, 금귀, 분귀가 호랑이에게 만만국의 먹을 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호랑이는 온몸에 칠을 한 여대생, 탐욕스런 재벌, 거짓말쟁이 종교인 등을 먹으려다가 더럽다며 차라리 굶기로 한다. 호랑이는 팥죽할멈 일행을 먹고 싶어하고 이들을 잡아먹도록 도와줄 망품이 등장한다. [둘째 마당] 첫째거리 - 코커국의 체제을 찬양하는 박돌이, 돈만 밝히는 금순여사, 코커국 종교를 들여오는 종돌이, 문화를 들여오는 판돌이, 군인 칼돌이 등이 망품이를 기다린다. 둘째거리 - 망품의 다섯 졸개들이 춤을 추며 자기들을 과시한다. [셋째 마당] 첫째거리 - 망품 일당이 만만국 국민들에게 쫓겨 돌아오자 호랑이는 화를 내며 새로운 하수인을 찾는다. 둘째거리 - 전귀가 호랑이 앞에 선글라스에 돌대가리인 칼돌이를 데려온다. 칼돌이의 횡포에 포수와 깽쇠가 들고 일어서지만 모두 죽고 만다. 팥죽할멈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죽은 이들의 원혼을 달랜다.
출연/스태프
스태프 작/공동창작 연출/김정희
예술단체
극회 광대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유신 독재가 무너지자 그동안 구속되었던 반독재 인사들과 대학생들이 석방되고 수배가 해제되었다. 1979년 겨울, 수배 해제된 김선출, 김윤기가 대학으로 돌아오면서 마당극 운동의 발전을 위한 본격적 논의가 진행된다. 그리하여 1980년 1월 전남대 ‘민속문화연구회’와 ‘전대극회’가 중심이 되고 조선대 ‘탈춤반’과 전남대 ‘국악반’의 일부 회원이 결합하여 극회 ‘광대’를 결성한다. 극회 광대는 광주·전남 지역 최초의 마당극 단체이자 사회문화운동을 표방한 문화운동 단체이기도 했다. 이로써 윤만식, 박효선, 김태종, 김선출, 김윤기, 김정희, 전용호 등 광주·전남지역 마당극 1세대들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극회 광대는 1980년 3월 창단공연 <돼지풀이>를 성공리에 마친 후 황석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씨연대기>를 준비하던 도중 5·18을 맞는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배우 김태종, 이현주가 시민궐기대회에서 대중연설을 하고 전용호 등이 홍보작업을 전개하는 등 대부분의 광대 회원들은 ‘5월문화항쟁’에 투신하였고, 5·18 이후 사망하거나 구속·수배당하는 처지가 된다. 이같은 시련 속에서 극회 광대는 1981년 5월, 제2회 공연이자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인 <호랑이놀이>를 끝으로 해체되고 만다.
비평
(……) 모두가 잠들어 있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던 81년 5월 9일, 광주 YMCA 체육관에는 수천의 눈동자가 긴장감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광주민중항쟁 1주년이 되는 때, 항쟁의 현장 YMCA 체육관에서 바로 ‘5월’을 다룬 마당굿이 관객들의 숨막힐 듯한 열기 속에서 공연되었던 것이다. 이 마당굿이 ‘광대’의 제2회이자 마지막 공연이 된 <호랑이놀이>이다. <호랑이놀이>는 호랑이 탈을 쓰고 나온 미제국주의와 그를 축으로 재편된 이승만 정권의 등장 과정, 이승만에서 전두환(군사정권)으로의 권력 이전 과정, 민중들의 저항과 지배 세력의 탄압을 다룬 것으로, 끝부분을 5·18로 맺고 있다.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우회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현대정치사의 전형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후 각 대학의 정치적 소재의 마당굿 공연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호랑이놀이>는 다수 회원이 부재한 상태에서 회원 김정희를 중심으로 대부분 신입회원을 받아들여 새로이 훈련시키고 전남대 ‘민속문화연구회’ 회원의 일부가 배우로 지원함으로써 한 달여에 걸친 연습 끝에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정규회원이 부재하고 일시적으로 공연에만 참가한 회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호랑이놀이>는 한 차례의 공연으로 그치게 되고, 이 공연 이후 ‘광대’ 또한 유명무실해져 자연적 해체에까지 이르게 된다. (……) - ‘광주·전남지역의 마당굿운동에 대하여’, 박영정, <전라도 마당굿 대본집>, 놀이패 신명 엮음, 들불, 1989 (……) 광주항쟁 1년 뒤인 1981년에, 바로 광주항쟁의 현장인 광주 YMCA에서 공연된 <호랑이놀이>의 한 마지막 부분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호랑이의 총에 민중인 포수가 죽는 이 장면은, 광주항쟁에서의 죽음들을 상징한다. 마치 광주항쟁의 희생자의 어머니의 통곡을 연상하게 하는 팥죽할멈의 통곡이 이어진 후, 잽이는 "어이." 하고 포수가 부활하여 일어나기를 부추기고, 관객은 이런 잽이의 불림에 호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잽이의 "어이."는 관객의 호응을 예상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 공연 당시 관객들은 집단적 호응을 해준 것이 분명하다. (……) <호랑이놀이>에서 관중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관중의 인식과 정서는 다른 질이 되었을 것이며, (……) - <마당극양식의 원리와 특성>, 이영미, 시공사, 2001 (……) 81년 5월 광주의 극단 ‘광대’가 항쟁 1주년을 맞아 <호랑이놀이>라는 마당극을 내놓음으로써 이러한 얼어붙은 정적을 깨뜨리고 나섰다. 그것은 5공화국이 잔인한 피의 냄새를 지우고자 거짓 찬사를 벌였던 국풍’81이 진행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였다. <호랑이놀이>는 해방 이후부터 80년 5월항쟁까지의 현대정치사를 다룬 것인데 미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섬으로써 한국사회구성체론을 마당판을 통해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은 호랑이탈을 쓰고 나온 미제국주의자와 거기에 아부하는 국내의 권력자,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민중의 투쟁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일종의 탈판으로 70년대 <진오귀굿>의 도깨비마당 이후 본격적인 창작탈춤으로서의 한 획을 그으면서 그 후 대학가의 창작탈춤 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게 된다. - ‘80년대 연희예술운동의 전개–마당극·마당굿·민족극을 중심으로’, 임진택, <창작과 비평> 69호, 창작과비평사, 1990.가을
관련도서
<전라도 마당굿 대본집>, 놀이패 신명 엮음, 들불, 1989 <마당극양식의 원리와 특성>, 이영미, 시공사, 2001 <창작과 비평> 69호, 창작과비평사, 1990.가을
연계정보
-돼지풀이
관련사이트
놀이패 신명
관련사이트
5·18기념재단
관련멀티미디어(전체5건)
이미지 5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