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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귀 마당쇠

작품명
원귀 마당쇠
구분
1960년대
작품소개
정확한 의미에서 <원귀 마당쇠>는 마당극이라기보다 1970년대의 마당극 탄생에 직접적인 토대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동일 작으로 196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연극반에 의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소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이후 1964년 야외에서 재공연되기도 했다.
작품내용
추석날 밤 묘지. 무덤 서너 개가 흩어져 있다. 무덤 하나의 뚜껑이 활짝 열리더니 마당쇠의 원귀가 튀어나와 관중과 이야기를 나눈다. 마당쇠는 동학농민전쟁 때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관리에게 원한이 맺혀 있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 지나 탐관오리의 무덤도 찾을 길 없고 마당쇠의 가난은 손자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바로 옆 무덤에는 마당쇠의 무덤과 달리 귀한 먹거리가 그득그득 쌓여 있다. 마당쇠가 그 무덤을 툭툭 치니 다른 귀신이 나타난다. 그는 바로 마당쇠가 찾던 탐관오리 변학도다. 변학도는 살아 생전처럼 근본을 따지며 거들먹거리고 마당쇠는 그를 놀린다. 다른 무덤에서도 탐관오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이 튀어나온다. 변학도의 영혼은 그제서야 목숨을 구걸한다. 마당쇠는 변학도 덕에 잘 살고 있는 변학도의 손자가 용서를 빌어야 살려주겠다고 한다. 달이 높이 오르고 원귀들은 술을 마신다.
출연/스태프
출연 마당쇠/홍길한 변학도/이영윤 팔뚝이/지정관 쩔뚝이/서재명 꺽달이/이해경 스태프 작/조동일 연출/이필원 기획/심갑섭 장치/이용국 조명/이수영 음악/목동균 효과/황기찬 가면/박창식 무대감독/임윤성 무용지도/김천흥
예술단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연극반 1960년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거치면서 새로운 예술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에서 4·19를 경험한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예술문화에 대한 반성적 문제제기가 생겨났다. 이중 서울대 문리과대학 연극반은 마당극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는데, 특히 1963년 공연된 <원귀 마당쇠>는 특별히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은 이후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1976년을 즈음하여 서울대학교 총연극회로 통합되었다.
예술가
조동일(1939~) 경북 영양 출생. 1962년 서울대 불문과 졸업. 1966년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76년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원귀 마당쇠>, <야, 이놈 흥부야!> 등 전통문화를 재해석하여 한국적 문화를 재구성하는 작품을 썼다. 이후 <한국가면극의 미학>, <탈춤의 역사와 원리> 등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냈으며 이는 1970년대 탈춤부흥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비평
(……) 아직 이른바 ‘민족문화운동’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그 시작, 그 남상(濫觴)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1964년 <5·20 민족적민주주의장례식> 행사와 시위대에 상연된 조동일 작 <원귀(怨鬼) 마당쇠>일 것이다. 세트도 없는 문리대 운동장의 스타디움에서였기 때문에 아직 ‘마당’과 같은 원형(圓形)을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당쇠>는 마당극 또는 마당굿 등 소위 ‘민족문화운동’의 틀림없는 원조(元祖)요, 남상(濫觴)이다. 그 뒤를 이어 내가 각색(脚色)하고 연출한 박연암(朴燕岩)의 <호질(虎叱)>과 조동일이 쓴 <야, 이놈 놀부야!>가 나온다. <호질(虎叱)>은 마당이 아닌 나무마루의 강당이었지만 무대는 완벽한 원형(圓形)이었고, 이른바 ‘협동적 시각’(協同的 視覺)을 구현하는 연출기법이었으며 <놀부>는 서울대 본부의 돌계단 앞마당에서였으니 초기 ‘스케네’, 즉 간단한 배경이 있는 희랍식 원형(圓形)무대인 셈이었다. 반(反)독재 민주화운동의 전 시기를 언더그라운드에서 휩쓸었던 ‘민족문화운동’의 전위(前衛)는 문학(文學)과 함께였지만 그보다 오히려 더 첨예하게는 마당극과 마당굿, 그리고 풍물과 놀이운동이었다. 노래도 미술도 무용도 영화도 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였지만 그 종합성, 대중성, 영향력과 현장성 등에서 연희예술 쪽이 가장 진취적이었는데 이미 그 특징이 <원귀(怨鬼) 마당쇠>와 <호질(虎叱)>과 <놀부야>에서 드러난 것이다. (……) ‘<원귀 마당쇠> 연구’, 김재석, <한국극예술연구> 제21집, 한국극예술학회, 2005 조동일의 <원귀 마당쇠>는 한국 마당극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다. 1963년 11월 19일(화) 오후 5시부터 개최된 <향토의식초혼(鄕土意識招魂)굿>의 한 부분으로 공연된 이 작품은 이후 전개된 마당극의 생성·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남겼다. 제1회 <향토의식초혼굿>은 “상호배타적으로 인식되기 쉬운 연극과 굿, 그리고 실내공연과 실외공연을 모두 아우르는 공연원리가 소박하게나마 실험되었다는 점”(김재석, ‘<향토의식초혼굿>의 공연특질과 연극사적 의미’, <한국극예술연구> 제18집, 한국극예술학회, 2003, 185면)에서 공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야외 공연으로 이루어진 ‘사대·매판·굴종지구(事大·買辦·屈從之柩)’의 장례식과 농악굿도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원귀 마당쇠>는 서구적 무대극 관습에 익숙한 당대 관객들에게 새로운 연극의 가능성을 제시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보인다. (……) <원귀 마당쇠>는 공연시간이 40~50분 정도인 단막극인데, 죽어서 무덤을 이웃하고 있는 마당쇠와 변학도가 중심인물로 나오고 원귀인 팔뚝이, 쩔뚝이, 꺽달이가 부수적 인물로 잠시 등장한다. 극중 장소가 바뀌지 않으며, 사건이 복잡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수가 많지 않아 긴 시간의 준비 없이도 공연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 작품임을 알 수가 있다. (……) ‘<원귀 마당쇠> 연구’, 김재석, <한국극예술연구> 제21집, 한국극예술학회, 2005
관련도서
<한국극예술연구 제21집>, 한국극예술학회, 2005 <한국극예술연구 제18집>, 한국극예술학회, 2003 <흰 그늘의 길>, 김지하, 학고재, 2003 <마당극양식의 원리와 특성>, 이영미, 시공사, 2001
연계정보
-구리 이순신
-진오귀굿
관련사이트
조동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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