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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추

단체명
극단 미추
장르
극단
개요
극단 미추는 1986년 8월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를 비롯한 30여 명의 단원을 주축으로 연출가 손진책에 의해 창단된 단체이다. 민족극 정립에 앞장서 온 단체로 마당놀이를 우리 땅에 정착시켰으며, 창극과 꼭두각시 놀음 등을 지속적으로 공연해왔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과 어우러진 작품들로 전통극과 현대극, 뮤지컬을 넘나들며 대중과 만나온 한편 활발한 해외 활동을 통해 우리의 작품을 유고, 헝가리, 중국, 미국 등의 외국에 알렸다. 1996년 경기도 양주군에 극장과 연습실 그리고 교육시설 등을 갖춘 미추산방을 열었다.
해설
극단 미추는 손진책 대표가 민예극장 대표였던 시절 문을 연 ‘손진책 연출 연구실’로부터 시작됐다. 손진책은 “당시의 한국적인 연극이라는 것이 너무 형식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들었다. 그래서 내가 예술의 전반적인 것과 극단 운영과 레퍼토리 선정 등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전문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끝에 윤문식, 김종엽, 정태화, 송영태, 이명수, 이기봉 등과 함께 미추를 탄생시킨다. ‘미추’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은 이름인데, 김용옥은 “아름다울 미(美)자를 보면, 양자 밑에 큰 대자가 있으며 이는 크고 건강한 양을 바친 제의를 뜻한다. 추(醜)자는 술 주자 옆에 귀신 귀자를 쓰는데, 무당이 술병을 놓고 춤을 추는 모양새로 역시 제의의 표현이다”라는 재미있는 뜻풀이를 하기도 했다. 미추는 1987년 창단공연으로 <지킴이>를 올린다. 이후 미추는 형식보다 정신을 강조한 한국 연극의 정체성 찾기 작업을 지속한다. 1987년부터 미추는 엄청난 관객의 호흥 속에서 마당놀이 작품을 매년 올린다. 관객들에게 사랑받은 마당놀이의 레퍼토리로는 <심청전>, <홍길동전>, <놀부전> 등이 있다. 미추는 고전을 현대적으로 패러디한 일련의 마당놀이라는 장르를 우리 땅에 정착시켰다. 또한 1987년부터 지금까지 총 여섯 편이 올라간 창극 역시 우리 연극을 찾으려는 미추 노력의 일환이다. 미추는 판소리의 ‘듣는’ 재미를 연극적 상상력으로 바꾸는 노력을 기울이며 창극의 완성도를 계속 실험하고 있다. 이외 미추의 대표 레퍼토리로는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계승한 <남사당의 하늘>이 있으며, 체제 비판의 주제 의식이 강한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 아리엘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 등이 있다. 아리엘 도르프만과 미추의 인연은 그의 신작 <경계>를 2005년 국내에서 손진책이 연출하는 것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1996년 대안연극학교인 미추연극학교와 미추관현악단을 갖춘 미추산방이 문을 연 이후 미추는 베세토 연극제 참가 등의 해외 활동과 더불어 <허삼관 매혈기>, <최승희>, <정글 이야기> 등의 신작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장군의 발톱
오장군의 발톱은 순박한 농부의 아들 오장군이란 이름의 이등병이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커다란 전공을 세우고, 적측의 경의를 받으며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 인간의 비극을 아름다우리만큼 담담하게 펼쳐보임으로써 조직사회 속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인간성 상실’이라는 비극의 깊이를 더욱 진하게 전해주는 박조열의 대표작이다. “오장군의 발톱은 전쟁의 냉혹함을 통렬하게 고발한 반전 희곡이자, 비정한 조직 사회에서 인격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부품으로 전락해가는 인간들을 위한 진혼곡이기도 하다. 곧 우리들의 진혼곡인 셈이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진혼곡을 부를 생각도, 듣게 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냉철히 듣고 분노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능한 한 단순화하려고 애썼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우리의 전통적 마당개념에 접근해 있다. 다만 그의 서사극이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미추의 서사적 마당극은 객관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상황의 객관적 인식에서 출발하도록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연극은 연극으로서 인식되도록, 무대적 환상에서 벗어나 그것이 처한 역사적 맥락에서 관객과 주고 받는 느낌의 총체성이 역동적 힘을 가지도록 의도했다.” 1975년 자유극장이 이 작품을 연습하던 중 군대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공연 연습 중 예륜으로부터 공연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후 13년 동안 공연하지 못하다가 민주화 이후 해금되어 1986년 극단 미추가 공연하였다. 이후 극단 미추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어 여러 차례 재공연되었다.
남사당의 하늘
<남사당의 하늘>은 우리나라 유일의 유랑연예 집단인 남사당의 첫 여성 꼭두쇠인 바우덕이의 일생을 통해 그들의 삶의 애환을 밀도있게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민중놀이의 전통을 마지막까지 이어온 안성 먹뱅이 남사당패의 생활상과 그들의 예술혼을 통해 민중 속에 살아 숨쉬는 전통놀이의 예술성과 그 가치를 가늠해 보고 남사당의 여섯 가지 놀이(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를 연극적으로 재현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할 정신적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당놀이 변강쇠전
제1부 : 때는 어느 때인지 모르나 평안도 월경촌에 사는 옹녀는 용모와 자색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사주팔자에 청상살이 겹겹이 쌓인 옹녀는 기구한 팔자대로 콩 주워먹듯이 서방을 잃는다. 서방뿐 아니라 옹녀의 색을 탐한 남자는 모두 황천길로 떠나니 동네 아낙네들은 옹녀를 마을에서 쫓아낼 작당을 한다. 아녀자들의 악다구니에 지친 옹녀는 자진해서 마을을 떠난다. 한편 경상도 어느 지방에 사는 건달 변강쇠는 동네에서 저지른 횡포로 말미암아 몽둥이 세례를 받아 마을에서 도망나오다 같은 처지인 옹녀를 길에서 만난다. 응큼한 변강쇠는 옹녀를 보자마자 속궁합부터 보자고 하고 천하의 색녀 옹녀도 선뜻 수락한다. 천생연분임을 알게 된 이들은 함께 도방살이에 오른다. 게으름뱅이 변강쇠가 돈을 전부 탕진하자 보다못한 옹녀는 산에 들어가서 살자고 제안한다. 지리산에서 심기일신한 변강쇠는 나무를 하러간다. 배운 것이 없고 게으른 변강쇠는 마을의 수호신 장승을 땔감으로 패온다. 옹녀의 지청구도 잠깐, 변강쇠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장승들에 의해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고는 장승 동티로 죽는다. 다시 과부가 된 옹녀. 언체인드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변강쇠는 영혼으로 다시 등장한다. 제2부 : 옹녀는 변강쇠 장례치를 돈이 없어 변강쇠를 치워주면 같이 살겠다는 조건을 건다. 옹녀에 반한 승려, 초랑이, 가객, 사물패가 덤벼들지만 변강쇠 영혼이 주문을 걸어 모두를 죽인다. 이때 옹녀의 자태에 매혹당한 진행자가 급살맞은 여덟 송장을 각설이패와 함께 치우겠다고 나선다. 길을 가다 쉬려고 송장을 내려놓지만 송장과 각설이패 모두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송장은 천근만근, 꿈쩍도 안한다. 자기네 참외를 서리할까 싶어 급습한 움생원도 상관초를 얻어피우려다 송장에 붙어버리고 무리지어 들어온 사당패, 엿장수도 연이어 붙는다(나중엔 관객까지 동원해 거대한 인간 고리를 만들어낸다). 계속 장난치는 변강쇠 영혼은 보다 못해 옹녀가 용한 무당을 데려와 해원굿을 열자 변강쇠 송장만 빼고 다 떨어진다. 옹녀의 간곡한 부탁으로 변강쇠는 옹녀에 대한 미련을 접고 떨어져 나간다. 변강쇠, 세상만사 번뇌를 잊고 자기 장례식을 흥겹고 화려한 놀이판으로 장식한다.
손진책 (1947~ )
1947년 경북 영주 출생의 연출가. 1967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을 했으며 같은 해 극단 산하에 입단하여 기획자 김유성 선생의 일을 도우면서 차범석, 표재순, 유흥렬 선생의 조연출을 맡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성국극이나 악극 등을 접하였고, 서라벌 대학 시절 전국 각지를 돌면서 우리 굿의 기원과 구조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 부설 민족연극연구소 조교로 근무하다 허규 연극연구소 강사로 일하였으며, 1973년 구자흥, 정현, 김흥기, 공호석, 오승명씨 등과 함께 허규 선생을 모시고 극단 민예를 창단하였다. 1974년 장소현 작의 <서울 말뚝이>로 첫 연출데뷔를 했으며, 1976년 명동국립극장의 마지막 공연인 <한네의 승천>을 연출하였다.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마당놀이의 개념을 수립, 해마다 작품을 올리고 있다. 1982년 문예진흥원 해외연수자로 선발되어 영국 로열세익스피어컴퍼니에서 연수를 받았다. 1986년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 정태화 등과 함께 극단 미추를 창단하였고, 창단공연으로 <지킴이>를 연출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한강축제에 총감독을 맡았으며, 1989년 서울연극연출가그룹 회장, 1994년 ITI(국제극예술협회) 부회장,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연극제 예술감독, 2002년 FIFA 한일월드컵 개막식 총연출을 역임하였다. 1976년 제12회 한국연극영화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필두로 1983년 한국연극예술상, 1987년, 93년 서울연극제 연출상, 1988년, 89년, 94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 1996년 국립극장 선정 올해의 연출가상을 수상하였다. · 대표작품 <서울 말뚝이> <한네의 승천>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 <신이국기> <남사당의 하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창단선언문
우리는 마당을 추구한다. 마당이란 무엇인가? 그곳은 오늘이다. 그곳은 영원한 현재다. 미래와 과거를 융해하는 살아 움직이는 현재다. 우리에게는 오늘의 마당을 무시한 내일과 어제의 마당은 없다. 마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기다. 그것은 여기 우리 삶의 생활공간 속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예술의 내용과 형식이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우리의 고유한 삶의 형식이다. 그것은 일체의 권위에 굴종할 수 없는 우리의 독자적인 삶의 과정이다. 마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운명에 안위로서 제공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운명적 삶의 영원한 개혁이다. 우리에게는 오늘을 개혁하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마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객이 일체가 되는 영원한 역동성이다. 그것은 전통적 인습을 타파하는 끊임없이 새로운 전통이다. 마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표출하는 우리 몸의 느낌이다. 우리 삶의 어둠과 맑음을 동시에 조명하는 몸부림이다. 우리에게는 醜를 떠난 美가 없고 美를 떠난 醜가 없다. 美醜! 美醜는 우리의 영원한 마당이다.
관련도서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극단탐방-극단 미추’, <한국연극>, 2003년 5월호
연계정보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
-남사당의 하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물도리동
-한네의 승천
-창극 천명
-창극 임꺽정
-한강은 흐른다
-서울말뚝이
-마당놀이 변강쇠전
-둥둥 낙랑둥
-뙤약볕
-춘궁기
-허삼관 매혈기
-민예극장
-세추안의 선인(Der gute Mensch von Setzuan)
-코카서스의 하얀 동그라미 재판(Der Kaukasische Kreidekreis)
-맥베스(Macbeth)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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