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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林英雄)

예술가명
임영웅(林英雄)
전공
연출
개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빼놓고 연출가 임영웅을 말할 수 없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이 작품을 10여 차례나 새롭게 연출하면서 인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전개되는 기쁨과 슬픔, 의혹과 진실의 실마리를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1969년 12월,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이 작품이 초연될 당시 관객들은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막이 오르자 객석에서는 시종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접한 관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고도’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임영웅의 ‘고도’는 ‘부조리’, ‘실존주의’ 등과 같은 철학적 의미를 강조하는 대신 인간의 조건과 삶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1988년 서울국제연극제에 왔던 부조리극의 세계적 권위자 마틴 에슬린은 이 공연을 보고 “베케트의 철학은 비극적이긴 하지만 유쾌한 허무주의로 진전시킨 임영웅의 ‘고도’는 훌륭한 무대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영웅이 연극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로 진학하여 김규대 밑에서 연극연출 수업을 받고서부터다. 김규대는 한국연극의 리얼리즘 연출의 맥을 잇는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이해랑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협에서 배출된 새로운 세대의 연출가 그룹에 속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김규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임영웅은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1956), <세일즈맨의 죽음>(1957)에 김규대의 조연출로 발탁되어 실제 무대경험을 쌓는다. 그 후 동인극장에서 막스 프리쉬 작 <전쟁이 끝났을 때>를 연출하며 정식 연출가로 데뷔했다. 이후 세계일보, 조선일보, 대한일보 기자를 거쳐 동아방송 드라마 PD로 입사, 예그린 악단 창설에까지 관여하게 된다.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공연으로 평가받고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하는 기회를 잡는다. 그 뒤 <꽃님이 꽃님이>, <대춘향전> 등을 연출하면서 뮤지컬의 연출가능성을 확인한다. 국립극단의 <환절기>(오태석 작) 공연을 연출하면서 연출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환상살인>, <인종자의 손> 등과 같은 창작극 연출에 잠시 전념한다. 그러다 헤롤드 핀터의 <덤 웨이트>를 만나고 이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기에 이른다. ‘고도’처럼 임영웅에게 늘 따라다니는 별명이 있다. 바로 ‘산울림 소극장지기’가 그것이다.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한 이래 줄곧 대표를 맡아오다, 극단 창단 15주년이 되던 1985년 드디어 소극장 산울림을 개관한다. 이 소극장에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함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곤 하는 별칭이 있다. ‘여성연극의 산실’이 그것이다. <위기의 여자>, <숲속의 방>,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안녕>, <담배 피우는 여자>, <그 여자> 등 수많은 여성연극이 공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막상 이러한 세간의 평가에 동조하지 않는다. 만일 여성연극이라는 것이 있다면 남성연극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임영웅이 지닌 연출관에서 기인한다. 그는 인간의 삶과 밀착된 예술을 강조한다. 따라서 여자의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이야기 안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즉 그는 연극이 인간을 그리는 작업이며, 좋은 연극이란 인생을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연출자에 의해 탄생한다고 믿는‘정직한 연출가’인 것이다.
생애와 약력
1936년 서울 출생 1948년 서울휘문중·고등학교 거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서 연극연출 전공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중퇴 1958년 세계일보, 조선일보, 대한일보 문화부 기자 / 동아방송 개국에 즈음하여 라디오 드라마 PD 1966년 한국 최초의 본격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연출 1968년 <환절기>로 국립극단 첫 연출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 한국연극협회 이사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초빙 교수 1973년 한국방송공사 TV연예부 차장 1989년 한국 최초로 <고도를 기다리며>로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참가 및 파리 공연 1990년 더블린연극제에 초청되어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한국 최초)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1994년 폴란드 비브제제국립극장 초청으로 그단스크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한국 최초) 1999년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출 2001년 극단 산울림, 소극장 산울림 대표 / 문화관광부 21세기 문화정책위원회 위원 /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초빙교수
상훈
1969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1970년 서울신문 문화대상 대상 및 연출상 1972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1982년 서울연극제 연출상 1985년 서울연극제 연출상 1986년 백상예술대상 대상 및 연출상 / 동아연극상 연출상 1987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 서울시 문화상 1990년 김수근 문화상 1995년 대한민국예술원상 / 동랑연극상 2000년 백상예술대상 대상 및 연출상 2003년 제1회 파라다이스상 수상(문화예술부문)
작품활동
1955년 제1회 전국남녀중고 연극경연대회 <사육신> 연출 1964년 극단 동인극장 <전쟁이 끝났을 대> 연출 1967년 예그린악단 창작뮤지컬 <대춘향전> 연출 1969년 극단 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 1970년 펜클럽 세계대회 기념공연 <산불> 연출 1986년 서울시립가무단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출 1991년 극단 산울림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연출 1992년 극단 산울림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연출 1996년 극단 산울림 <담배 피우는 여자> 연출 1998년 국립극단 공연 <혈맥> 연출 1999년 99서울연극제 특별초청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 극단 산울림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 시리즈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고도를 기다리며> 등 연출 / 국립극단에서 최초의 일본작품 <친구들>(아베 고보 작) 연출 /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1999년 베스트 5 무대에 선정됨 2000년 이해랑 선생 서거 11주기 추모공연 체호프 작 <세자매> 기획·제작·연출 2001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 연출 / 동경에서 일본극단 청년극장 공연 <감사합니다> 초청연출 / 제8회 베세토연극제 <고도를 기다리며> 시즈오카 예술극장에서 공연 2004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 <가시고기> 연출
대표작품
<고도를 기다리며> <위기의 여자> <목소리>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리뷰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극장문을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궁금증에 휩싸이게 된다. 또 웃긴 웃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곱씹어 보면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익숙한 전통극과는 영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1969년부터 34년째 이 작품으로 상당수 사람에게 충격(?)을 줘 온 연출가 임영웅 씨(극단 산울림 대표). 올해 고희를 맞는 백발의 노(老)연출가는 이번에 15번째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해외공연까지 합하면 20번째이다. ‘고집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임씨가 30년이 넘도록 이렇게 어려운 부조리극 <고도…>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현대사회의 인간을 이 작품만큼 철저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다양하게 그린 작품은 찾아볼 수 없어요. 공연을 할 때마다 늘 신선하고 숨겨져 있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죠.” 1969년 <고도…>를 공연한 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 극단 산울림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1985년 산울림 소극장 개관작품으로도 <고도…>를 올렸다. 그리고 극장 개관 후에는 거의 매년 공연을 했으니 그에게 이 작품은 뗄래야 뗄 수 없는, 피붙이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처음엔 악전고투를 많이 했죠.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해야 할지, 내가 표현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석인지 스스로에게 의문도 많이 던져야 했지요. 지금은 하도 많이 하다 보니까 배우들이 대사 한 줄 틀린 것도 바로 알죠.” 특히 올해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에서 초연된 지 50주년을 맞는 해. 반세기 동안 <고도…>는 많은 사람의 기다림의 대상이 되어온 셈이다. 그는 1989년 아비뇽페스티벌과 이듬해 베케트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서양의 고도와는 또 다른 ‘동양의 고도’로 극찬을 받았다. 임씨는 자신이 만드는 <고도…>가 “세계에서 가장 원작에 충실한 작품일 것”이라고 말한다. “1969년부터 지금까지 연출해 오면서 대사 하나도 지우거나 보태지 않았어요. 워낙 작품의 구도가 완벽해 조금만 첨삭을 가해도 작품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대본은 같지만 할 때마다 작품이 매번 바뀌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배우가 바뀌고 나이가 들면서 작품에 투사되는 자신의 인생관과 연극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 그가 30년 동안 받았을 법한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연출가인 당신은 고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는 “새뮤얼 베케트도 미국에서 이 작품을 초연한 연출가가 한 질문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다면 작품 속에서 그것을 밝혔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면서 “그것에 대한 해석은 철저히 관객의 몫이고, 사람들이 당시의 상황에서 가장 갈구하는 그 무엇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 - <매일경제>, 심윤희, 2003년 6월 1일
창작노트
(……)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 것이 실상 여성의 모든 것일 수 있습니다. 여자가 태어나면 일차적으로 엄마와 관계를 맺지요. 그러다 출가하면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합니다. 종국에는 엄마 역할만 하다가 끝나지요. 이 연극은 ‘내가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나’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딸에게 어떤 엄마였고 엄마에게는 어떤 딸이었나’를 자문하게 하고 결국엔 ‘내가 딸에게 어떤 엄마였나’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작가가 유태계 프랑스인이어서 자녀관이 우리와 엇비슷하다는 점도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어필했을 것으로 봅니다.” (……) “어떤 형태의 연극이든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게 선택권이 있고 산울림에 선택권이 있는 한, 저는 제가 공감하는 작품만 선택합니다. 제 생각에 배우와 스태프가 공감하면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지요. 제가 받은 공감과 동질의 것을 받으라는 게 아니에요. 관객은 개인 삶의 철학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공감하겠지요. 그 공감이 사회적 활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 산울림 연극을 그렇게 이해하시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 ‘소설가 이상락의 이 사람의 삶-임영웅 편’, 이상락, <신동아>, 1999년 3월호
관련도서
<한국예술총집>, 대한민국 예술원, 2000 <우리 시대의 연극인>, 서연호, 연극과인간, 2001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해외 공연>, 오세곤, 한국연극교육학회, 2003 <한국의 연출가들>, 김남석, 살림, 2004
연계정보
-환절기
-고도를 기다리며
-달집
-하늘만큼 먼 나라
-위기의 여자
-목소리(La Voix Humaine)
-대춘향전
-살짜기 옵서예
-극단 산울림
-소극장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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