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차범석(車凡錫)

예술가명
차범석(車凡錫)
전공
극작
개요
차범석은 1955년 단막극 <밀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고, 이듬해 단막극 <귀향>이 역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20대에 전쟁을 겪은 그는 임희재, 이용찬, 하유상 등과 함께 전후작가에 속한다. 그는 30여 년 동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희곡 외에도 라디오 드라마, TV드라마 등 많은 작품을 썼고, <한국의 소극장연극 연구>(1987) 등 다수의 논문과 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범우사, 1984), 연극론집 <동시대의 연극인식>(범우사, 1987) 등을 출간했다. 작가 차범석을 모르는 사람들도 TV드라마 ‘전원일기’의 작가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차범석은 문단 데뷔 전 습작 활동으로 고향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학교 예술제와 고향의 주간지나 월간지를 통하여 <별은 밤마다>를 포함하여 일곱 작품을 발표했다. 문단 데뷔 후로는 서울로 생활 근거지를 옮기면서 제작극회와 극단 산하를 결성하여 창작극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장을 마련했으며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기틀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연기자와 연출가를 배출하여 우리 연극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20대에 전쟁을 겪은 차범석은 초기 작품에 전쟁의 상흔이 나타나고 있으나 일부 작가들처럼 전쟁의 분위기에 끝까지 매달리지 않고 사회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혀 변천하는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표현한 다작의 작가가 되었다. 그는 소재의 폭이 넓은 작가로서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변화해가는 사회를 그때그때 포착하여 작품화하는 것이 특기라고 할 수 있다. <밀주>, <귀향>을 필두로 1950년대에는 대표작 <불모지>, <나는 살아야 한다> 등 11편과 창극 <꽃이 지기 전에>, <견우와 직녀>를 발표했고, 1960년대에는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을 비롯, 역작으로 꼽히는 <산불>과 <갈매기떼>, <청기와집> 등 17여 편의 희곡과 <적과 흑> 등 3편의 작품을 각색, 번역하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에는 <왕교수의 직업>, <학살의 숲> 등 21편, 1980년대 이후에는 <학이여, 사랑일레라>, <꿈 하늘>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다. 2003년에는 신작 <옥단어>를 발표하여 식을 줄 모르는 창작열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 묶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다양한 소재를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작품 경향을 논해본다면, 첫째, 로컬리즘을 바탕으로 한 풍속적 경향을 들 수 있다. 그의 고향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애환을 작품 속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항구나 섬사람들, 특히 가난한 서민들의 삶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둘째, 사회 비평적 경향이다. 6·25전쟁의 상처, 문명화에 따른 인간성 상실과 정치의 허위성과 비리, 그리고 중요한 테마로서 신·구세대의 충돌과 그에 따른 전통성의 몰락 등을 다루고 있다.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과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통한 인간성 상실 문제와 시대 변화에 따른 애욕의 갈등 문제로, 사랑을 그릴 때 미화시키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감상이 아닌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위선적인 비리와 윤리적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차범석은 작품의 소재와 제재를 우리 생활 주변에서 가져와 우리의 이야기를 작품세계에 표현한 철저한 리얼리즘 작가이다.
생애와 약력
1932년 목포 제일보통학교 입학 1938년 광주 고등보통학교 입학 1942년 광주 고등보통학교 5년 졸업 후 2년간 동경에서 재수생활을 하다 귀국 1944년 광주 사범학교 강습과 입학 1945년 목포 북교초등학교 근무 / 일본군에 소집당하여 제주도에서 복무 중 8·15 해방을 맞음 / 북교초등학교에 복직 1946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47년 연희전문학교 문학부 영문과 편입 / 연희극예술연구회 조직. 박옥순과 결혼 1950년 6·25전쟁으로 학업을 포기, 목포로 피난. 이후 5년간 목포중학교 교사로 근무 1956년 덕성여고 근무 / 제작극회 창단 1960년 문화방송(주) 연예과장 취임 / 이후 CM과장 제작부장 편성부국장 등을 역임 1963년 극단 산하 창단 1965년 연세대 영문과 4학년에 복학 / 국제펜클럽 중앙위원에 선임 / 서라벌예대, 이대, 연대 등에 출강 1966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 / 국제펜대회 뉴욕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 1968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피선 / 동국대 출강 1969년 MBC-TV 개국 준비요원으로 일본 NHK에서 2개월간 연수 / 국제펜대회 망똥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 / 숙명여대 출강 1971년 MBC 사임 1972년 한국예술윤리위원 위촉 1973년 예총 부회장 선임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 선임 1974년 중앙국립극장 운영위원 위촉 / 서울시 문화홍보분과 자문위원 위촉 1975년 국제극예술협회 베를린 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 1976년 한국방송심의위원 피선 1978년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부위원장 피선 / 대한민국연극제 심사위원 위촉 1979년 국제극예술협회 소피아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 / 서울예술전문대학 출강 1980년 MBC-TV <전원일기> 집필(1년간) 1981년 한국방송 광고공사 광고심의위원장 위촉 /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피선 1982년 문화방송 자문위원 위촉 / 연극제 희곡상 수상에 따르는 구미 여행 1983년 20년간 주재해왔던 극단 산하 자진 해단 /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출강 / 서울극작가그룹을 발족하여 회장에 선임 1984년 청주대학교 예술대학장 취임 1986년 서울88예술단 단장으로 취임 1988년 청주대학교 교수협의회 초대회장으로 피선 1989년 청주대학교 교수직 사임, 서울예술전문대학 극작과 교수로 취임 1991년 연극의 해 집행위원장 선임 1993년 제25회 국제극예술협회 회의 참가(독일 뮌헨) 1995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에 피선 / 서울예전 교수직 사임 1996년 중앙국립극장 운영위원 위촉 1997년 목포 개항 100년 기념 <시민선언> 발표 1998년 한국문예진흥원 원장에 취임 1999년 연세대학교 동문회에서 ‘연세를 빛낸 사람들’ 선정 / 경희대학교 정보문화대학원 객원교수로 임명 / 대구에서 ‘차범석연극제’ 실행 / 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이사장 취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평양방문 / 한일문화인교류회 한국대표로 참가 / 한국문예진흥원 원장직을 사임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에 취임 2001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출강 / 대불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 2006년 타계
상훈
1962년 목포시 문화상 수상 1969년 신문화 60년 기념 공로표창(국무총리상) 1970년 제2회 대한민족문화예술상 수상(연극부문) 1975년 제2회 반공문학상 수상 1980년 목포 송옥문화상 예술부문대상 수상 1981년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 수상(<학이여 사랑일레라>) 198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83년 제7회 동랑연극상 수상 / 제4회 방송대상 라디오부문 극본상 수상 1991년 <식민지의 아침>으로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수상 1993년 제3회 이해랑연극상 수상 1996년 금호예술상 수상(광주) 1997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998년 제1회 한림문학상 수상(광주) / 제4회 송파를 빛낸 사람으로 포상(송파구) 2000년 전남 향우회 주최 제2회 ‘자랑스러운 전남인’ 표창
작품활동
1948년 유달유학생회 주최로 박경창 작 <산촌>(목포극장) 연출·주연 1949년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참가. <오이디푸스>로 수상 / 김경옥, 조동화, 최창봉, 김지숙, 조성화, 박현숙 등과 대학극회 조직 1951년 처녀작 <별은 밤마다> 집필 1952년 목포 해군경비부 정훈실 발간 <전우>에 희곡 <닭>, <제4의 벽> 발표 / 목포중학교 제1회 예술제에서 희곡 <저주> 발표 1953년 월간지 <갈매기>에 희곡 <윤씨일가>와 <잔재> 발표 / 목포중학교 제2회 예술제에서 <달뜨는 무렵> 공연 1954년 번역극집 <근대 1막 극선>(항도출판사) 출판 / 목포중학교 제3회 예술제에서 <백의> 상연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희곡)에 <밀주> 가작 입선 / 목포중학교 제4회 예술제에서 <내 고향으로 나를 보내주오> 공연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희곡)에 <귀향> 당선 1957년 <무적>, <불모지>, <사등차>, <성난기계>, <계산기> 등 발표 1958년 <불모지>, <공상도시>를 제작극회에서 공연 / <희곡 5인 선집>(성문각) 출판 1960년 <상주>를 <목포문학>에 발표 / 첫 창작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정신사) 출간 / <공중비행>을 <사상계>에 발표 1962년 <태양을 향하여>, <산불>을 국립극단에서 공연 1963년 극단 신협 재기 기념으로 <갈매기떼> 공연 / <청기와집>을 <세대>에 발표 1964년 <청기와집> 공연(극단 산하) 1965년 <열대어> 공연(극단 산하) / <문예춘추>에 <스카이라운지의 강사장> 발표 / 중학교 국어 국정 교과서에 <고구마> 수록 1966년 드라마센터에서 <풍우아 나운규>(이원경 연출) 공연 1967년 <적과 흑> 각색 공연(극단 산하) 1968년 <장미의 성> 공연(극단 산하) 1969년 신연극 60주년 기념 <그래도 막은 오른다> 구성 공연 / 일본 희곡 <고독한 영웅>(후쿠다 원작) 번역 공연(극단 산하) / 제2창작 희곡집 <대리인>(선명문화사) 출판 / <대리인> 공연(극단 산하) 1970년 <왕교수의 직업> 공연(극단 산하) 1971년 투병 중 <환상여행> 탈고 1972년 <환상여행> 공연(국립극단) / <현대문학>에 <묘지의 태양> 발표 / <월간문학>에 <파도가 지나간 자리> 발표 / <위자료>로 지방 순회공연 / <커브쓰의 처녀>(베른슈타인 원작) 번역 공연(극단 산하) 1973년 <이차돈의 죽음> 공연(극단 산하) / 토월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로 <부활>(톨스토이 원작) 각색 공연 / <새마을 연극 희곡 선집>(세운문화사)을 출판 1974년 <약산의 진달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 공연(극단 산하) / <꽃바람> 공연(여인극장) / <낙엽>(이병주 원작) 각색 공연(배우극장) / <활화산> 공연(국립극단, 전국 순회) 1975년 <셋이서 원무곡을> 공연(극단 산하) / 제3희곡집 <환상여행>(어문각) 출판 / <현대문학>에 <안개소리> 발표 1976년 <학살의 숲> 공연(국립극단) / <쌍둥이의 모험> 전국 순회 공연 1977년 <손탁 호텔> 공연(국립극단) / <화조>, <오판>이 각각 광장과 산하에 의해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출품 1978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각색 공연(현대극장) / 월간 <한국연극>에 <간주곡> 발표 1979년 <민족문학대계>에 <표류> 발표 / <제인 에어> 각색 연출(극단 산하) 1980년 <모모>(미카엘 엔데 원작) 각색 공연(극단 산하) 1982년 제4희곡집 <학이여 사랑일레라>(어문각) 출간 / 무용극 <강>(조영숙 무용단), <갈증>(최청자 무용단) 공연 1984년 LA올림픽 참가공연 무용극 <도미부인>(국립무용단) 공연 / 대성학원 창립 60주년 기념 <새벽길> 공연 / 회갑기념 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와 <서울극작가그룹 대표희곡선집> 출간 1985년 제5희곡집 <산불> 출간(범우사) 1986년 <식민지의 아침>(청주연극협회) 공연 1987년 연구논문 <한국의 소극장연극 연구> 발표 / 평론집 <동시대의 연극인식>(범우사) 출간 / <꿈하늘>(김석만 연출) 공연(국립극단) 1988년 ‘연극계의 인맥’을 <예술과 비평>에 5회 연재 / 무용극 <십장생도>(홍정희 발레단) 공연 1989년 서울연극제 참가작 <사막의 이슬> 공연(극단 대하) / 채만식 원작 <태평천하> 각색 공연(국립극단) / 대한민국예술원 발간 <예술총론 연극편> 책임감수 1990년 야마네 마사코 원작수기 <머나먼 여로> 번역출판(서울신문) / 무용극 <저 하늘 저 북소리> 공연(국립무용단) / <대지의 딸> 공연(포항 은하극단) 1991년 무용극 <고려애가> 공연(국립발레단) / <한국곡론(韓國曲論)>을 방송통신대학 교재로 발간(공저) 1992년 제6희곡집 <식민지의 아침> 출간(학고방) / <신장한몽>(한국배우협회), <안네 프랑크의 장미>(국립극단), <청계마을의 우화>(극단 세미) 공연 1993년 논문 <한국소극장 연극사>를 월간 <예술세계>에 29회 연재 / <산불> 공연(연우무대) / 회고록 <예술가의 삶>(혜화당) 출간 1994년 고희기념 수필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 출간(융성출판사) / <무녀도> 각색 공연(극단 띠오 뻬뻬) 1995년 무용극 <파도>(국립국악원 무용단) 공연 / <바람분다 문열어라> 공연(극단 신시) 1996년 무용극 <오델로> 공연(국립무용단) 1997년 <나는 불섬으로 간다> 집필 공연(광주) / 오페라 <산불> 대본 탈고(국립오페라단) /자서전 <떠도는 산하> 월간 <예향>에 16개월간 연재 1998년 <검사와 여선생> 집필 공연 / 자서전 <떠도는 산하> 출간(도서출판 형제문화) 1999년 악극 <가거라 삼팔선> 공연(극단 신시) / 일본희곡 <친구들> 번역 공연(국립극단) / 오페라 <산불> 공연(국립오페라단) / 오페라 <녹두장군> 공연(호남오페라단) 2000년 뮤지컬 <로마의 휴일> 번역 작사 공연(극단 신시) / 희수기념 제7희곡집 <통곡의 땅> 출간(가람기획) / 무천극예술학회에서 <차범석 희곡연구> 발간 2001년 <그 여자의 작은 행복론>을 극단 산울림에서 임영웅 연출로 공연(극작생활 50주년 기념) 2002년 뮤지컬 <처용>(임영웅 연출, 울산시 주최) 공연 / 오페라 <백록담>(김정길 작곡, 제주시 주최) 공연 / 민요창극 <저 달이 지기 전에>(진도군 주최) 공연 2003년 <산불> 공연(극단 두레) / 팔순기념공연 <옥단어!> 공연(연희단거리패) / 제8희곡집 <옥단어!> 출간
대표작품
<불모지> <산불>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 <환상여행> <청기와집> <갈매기떼> <성난 기계> <옥단어>
저서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 차범석, 정음사, 1960 <대리인>, 차범석, 선명문화사, 1969 <환상여행>, 차범석, 어문각, 1975 <학이여 사랑일레라>, 차범석, 어문각, 1982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 차범석, 범우사, 1984 <산불>, 차범석, 범우사, 1999 <동시대의 연극인식>, 차범석, 범우사, 1988 <식민지의 아침>, 차범석, 학고방, 1992 <예술가의 삶>, 차범석, 혜화당, 1993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 차범석, 융성출판, 1994 <떠도는 산하>, 차범석, 형제문화, 1998 <통곡의 땅>, 차범석, 가람기획, 2000 <옥단어!>, 차범석, 푸른사상, 2003 <세계 명희곡의 이해>, 차범석, 국제출판사, 1981
리뷰
(……) <산불>(차범석 작, 김상일 연출, 포항은하극장)은 정통 사실주의 미학을 유감없이 실현시켜 놓고 있다. 전쟁(6·25)으로 인한 상처와 그 애환이 산골 사람들의 미묘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 서서히 구체화되면서 극적 추진력을 발휘한다. 탈출 공비 규복과 주인공 점례의 만남은 이를 허용치 않는 현실과 사월의 질투어린 개입으로 그 비극성을 자초하게 된다. 규복은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죽게 되고 임신한 사월은 비극의 씨를 잉태한 채 마을을 떠난다. 이 작품은 배우술·무대술·연출술의 탄탄함과 이들 상호간의 유기적 조화로 관객을 흡입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갈등 구조의 애매한 처리는 옥의 티가 되고 있다. 점례와 규복의 만남은 비극적 모티브의 축으로 여겨볼 때, 규복의 죽음은 당연히 점례의 내적 아픔으로 전이되거나 승화되어야만 할 것이다. 점례에게 일그러진 형상 대신 현실을 새롭게 긍정하고 출발하려는 성격이 부여됨은 일관성 있는 성격 창조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준다. 한편 디테일한 안방 대화 장면이나 산불 장면은 무대 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 - ‘1989년 제8회 전국연극제 총평’, 김길수, <객석>, 1988년 8월호 (……) 여인극장의 <산불>(차범석 작, 강유정 연출, 8. 31-9. 4, 문예회관 대극장)은 그동안 우리 연극사에서 ‘리얼리즘의 백미’, ‘리얼리즘의 진수’로 평가되면서 가히 한국 리얼리즘연극의 최고봉으로 간주되어 온 작품이다. 6·25전쟁 중 남자들이 모두 희생당한 산촌의 과부마을에 공비(방역 역)가 나타나 과부 점례(우상민 역)의 눈에 뜨이는데 점례는 공비가 공산주의의 허위와 기만에 실망하여 탈출하였으나 아군에 자수하면 총살당할 것이 두려워 숨어 지내는 것이라고 고백하자 그를 대밭에 숨기고 쉽게 가까워진다. 이 사실은 곧 욕정에 굶주려 있는 이웃의 과부 사월(서권순 역)이에게 발각되고 사월이는 비밀을 지키는 대신 공비를 공유한다. 얼마 후 사월은 입덧을 하게 되는데 공비 토벌작전을 개시한 국군이 대밭에 불을 질러 공비가 사살되고 사월이도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한다. 여기서 등장인물 모두는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희생자로 그려져 있고 조금씩 역전되는 전세의 긴박감이 점층적으로 구축되면서 과부들이 식량을 걷어 공비들에게 바치거나 야경을 서는 등 전쟁 중에 고립된 과부마을에서 겪는 긴장과 애환이 강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기는 하다. (……) - ‘연극의 산불’, 김미도, <객석>, 1988년 10월호
창작노트
(……) 우리 연극계가 앞으로 찾아내야 하고 극복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연극의 전문화’라고 지적하고 싶다. 연극의 전문화는 다른 말로 말해서 성숙한 연극을 뜻한다. 여기서 성숙이란 말은 필연적으로 미숙하거나 치기에 차 있거나 건성으로 하는 척하는 연극과 대비시키는 말이다. 우리의 연극이 아직도 전문화가 안되어 있다는 말을 부드럽게 말하자면 아직도 아마추어의 집단들이 하는 학생극이거나, 원숙한 전문적 기능에 숙달된 연극인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극단을 만들고 공연비용이 마련되고 장소만 있으면 누구든지 연극을 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한 환경에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편리한 조건이 연극을 보다 완숙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사명감을 체득하기에는 불편한 장애물이 되고만 것이다. 연출도, 연기도 제작자도 이렇다할 수련기간도 없이 쉽게 무대 위에 서게 되었고 그것이 곧 공연 안하고도 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속물근성으로 물들게 한 것이다. 많은 예술 가운데 내가 택한 연극의 길에 대해서 겁을 내는 사람은 없는 실정이다. 그 길에서 30년, 40년을 바친 사람 앞에서도 신출내기 연출이나 풋내기 연기자가 활보하는 상태에서 연극의 전문화는 어렵게 되었다. 모든 예술이 적어도 10년 공부를 기본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결국 연극인도 그 10년 공부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기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다른 길을 택해야 옳을 것이다. -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 차범석, 융성출판, 1994
관련도서
<한국예술총집>, 대한민국 예술원, 2000 <우리 시대의 연극인>, 서연호, 연극과인간, 2001 <차범석 희곡연구>, 무천극예술학회, 국학자료원, 2003 <한국현대희곡사>, 유민영, 홍성사, 1982 <한국근대희곡사>, 서연호, 고려대출판부, 1994 <차범석 희곡연구>, 무천극예술학회, 국학자료원, 2003
연계정보
-산불
-불모지
-극단 산하
-제작극회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관련멀티미디어(전체7건)
이미지 7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