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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박첨지놀이(瑞山朴僉知놀이)

작품/자료명
서산박첨지놀이(瑞山朴僉知놀이)
전승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지정여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
구분
민속놀이
개요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音岩面) 탑곡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속인형극이다. 양반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풍자함으로써 건강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내용으로, 남사당의 꼭두각시놀음(중요무형문화재 제3호)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마을에서 전승되기 때문에 유랑 예인집단에 의해 전승되는 꼭두각시놀음에 비하여 대사나 곡조가 한층 소박할 뿐만 아니라 서산 지방 특유의 짙은 향토성을 보인다. 특이한 점은, 전문놀이집단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전승되는 국내 유일의 민속인형극이라는 점이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민속 인형극으로 유래를 문헌에서 찾을 수 없고 이 놀이를 전승하는데 크게 공헌한 주연산(1903~1993)옹의 증언에 따르면 고려시대부터 전하는 놀이라고 한다.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흐름
인형을 매체로 한 사회풍자극인 박첨지 놀이의 ‘박’은 인형을 바가지로 만들었다는데서 비롯되었고 ‘첨지’는 벼슬 이름으로 양반을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고(故) 주연산씨를 거쳐 서산 음암 마을주민 20여 명으로 구성된 보존위원회에서 명절날 마을 놀이로 행하고 있다. 탑곡리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는 박첨지놀이 유래비에는, 이 놀이는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1020년대에 강원도에서 이사해 온 남사당 출신 유영춘이 함께 참여하면서부터 짜임새가 갖추어졌다고 한다. 마을 농악대와 함께 놀던 이 민속은 일제 말기와 625 혼란기에 한때 중단되고 했으나 마을 주민의 의지로 다시 계승된 놀이다. 외지 나간 자녀들이 모여드는 명절이면 풍수정은 인형극을 무대에 올린다. 박첨지 놀이가 펼쳐지는 무대는 사방에 기둥 네 개를 세우고 까만 포장을 쳐 등장하는 인형에 초점이 모아지도록 한다. 인형 조종자는 포장 안에 들어 앉아 인형의 하반신을 잡고 조종한다. 인형들은 상반신만 포장 위로 올라와 관객들에게 모습을 보이게 마련이다. 악사들이 포장 밖에 앉아 연주하면서 조종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악사들은 악기 연주와 함께 인형의 말을 되받아 주는 산받이 역으로 1인 2역을 맡는다.
내용
서산의 박첨지 놀이는 3막으로 구성돼 있다. 1막 팔도강산을 유람하다 작은 마누라를 얻은 박첨지가 큰 마누라와 처남에게 발각당해 질책을 듣자 첩과 아내에게 재산분배를 해주고 여행을 떠난다는 줄거리이다. 여기서는 처첩제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모순을 풍자한다. 2막 정치를 소홀히한 평양감사를 질책한다. 사리사욕에 빠져 백성들을 수탈하는 전형적인 부패관리. 사냥나간 평양감사가 사냥한 꿩고기를 잘못먹고 체하여 죽게 되고 상여가 나가면서 막이 내린다. 3막 죽은 평안감사 가족이 불사를 건립하고 소경의 눈을 뜨게하는 내용이다. 종교에의 귀의로 박첨지 놀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전막에 걸쳐 박첨지가 이야기 전달자로 나와 산발이와 함께 양반들의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들려준다. 바가지 쪽을 가지고 만든 여러 모양의 얼굴이 입담을 풀어내면 방청석의 관람객도 한마디씩 거들며 극이 진행된다. 이같은 대화 형식의 극 진행은 서민들의 위정자에 대해 쌓인 응어리를 해소시켜 주는 기능을 맡는다. 꽹과리, 북, 징, 장구, 날라리가 염불, 타령, 굿거리 장단을 풀어내면 인형과 관람객들이 상반신을 들썩거리게끔 흥을 돋운다.
전승자 정보
현재 기능보유자로는 김동익(1934∼)이 있고, 1954년에 마을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된 '서산박첨지놀이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연계정보
· 관련도서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우리나라 민속놀이>, 沈雨晟, 東文選, 1996 ·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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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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