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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비 (1934.1.30~)

예술가명
이선비 (1934.1.30~)
구분
놀이와 의식
문화재관련정보
1992.7.1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 보유자 인정
학력(계보)
1963.2. 옹진출신 유씨 만신에게 내림굿 받음 1965.5. 장보배 만신에게 소놀음굿 사사
생애(약력)
1985.5. 강화군 교동면 주최 평산소놀음굿 공연 1987.10. 황해도민의 날 평산소놀음굿 공연 1989. 제3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평산소놀음굿 시범공연 1990. 평산소놀음굿 공연(서울 놀이마당) 1991. 평산소놀음굿 공연(롯데월드)
리뷰
재인-전통 예맥을 이어가는 사람들 103 신기(神氣)로 부리는 열두 거리 유형굿 탁월 사람들은 조마조마했다. 머리카락마저 썰리는 시퍼린 작두날 위를 50kg이 넘는 체중이 올라서도 과연 무사할까. 더구나 양손에는 묵중한 신칼까지 들러져 있어 둘러선 사람들은 불안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만일 발바닥에서 선혈이라도 흐르고 발뒤꿈치를 싹둑 베이기라도 한다면 어쩔 것이며, 또 무슨 망신살인가. 그러나 이선비(60)씨는 무사했다.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구경꾼들의 조바심을 조롱이라도 하듯 작두날 위를 펄쩍 뛰었다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야말로 신이 들린 것이다. 인천 화도공원의 ‘이선비 굿’ 현장에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듯 모였다. “저도 모를 일입니다. 무슨 능력이 있어 작두날에 맨발로 올라서도 성하고, 지나는 사람한테 마음만 쏘아 대면 삼계(전생, 이승, 저승)가 다 보이지……. 그저 말문이 열리는 대로, 신의 지시에 따라 육신을 움직여 줄 따름이지요.”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기도 하다. 생시에 처음 보는 상황인데 분명히 언젠가 본 것 같을 때가 있다.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얼마 전 꿈속에서 본 허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딴 세상에 온 건 아니며 몸이라도 쇠약해진 탓은 아닐까. “나는 몹시 다급한 처지여서 옆에 잠들어 있는 영감을 깨우려는데 입이 안 떨어지고 몸이 안 움직여요. 얼마 동안을 가위 눌리고 식은 땀만 줄줄 흘리다 겨우 깨어나면 온몸에 소름이 닭살처럼 돋아 있습니다. 어떤 날엔 한낮에 눈을 잠깐 감아도 저승을 보고 오는 수가 있어 녹초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무당, 만신, 점쟁이……. 한평생을 살면서 이 소리 들어 좋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자신들이 절박하고 간절해 부르고 찾아오면서도, ‘그 일’만 잘 해결되면 금방 뒤돌아서 사람 취급조차 안 해 버리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선비씨는 직장에 나가고 있는 젊은 신딸 셋이 있지만 ‘너무 험한 일’이라서 작파하도록 좌정시키고 있다. 김광원(金光元36)씨와 최순렬(崔順烈31, 여)씨는 뿌리칠 수 없는 팔자라서 신아들, 신딸로 내림굿을 해주었다. “신문에 나야 뭘 해요. 읽을 줄도 모르는데……. 전화번호도 챙길 줄 모른답니다. 그러나 제 말대로만 적어 놓으면 답답한 사람 속은 풀릴 거예요.” ‘족집게 만신’ 이선비의 명성은 그가 살고 있는 인천은 물론 서울, 경기 등 중부지역까지 자자하다. 여간했으면 인간문화재(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 1992년 7월 1일)로 지정해 놓았을까. 여자 나이 60(1934년 1월 30일생)인데도 이씨는 고왔다. 현재의 ‘화수동 집’에 39년째 살며 남편(박성모67)과 1남 2녀를 두었고 손자 손녀까지 있는 평범한 가정의 할머니였다. 황해도 평산군에서 출생, 옹진군 홍리면 서포리로 업혀 나와 자랐다는 이씨는 어릴 적 바보 소릴 들을 정도로 늦자랐다고 한다. 일곱 살 적 죽은 어머니가 다시 되살아 올 줄 믿고 상여 나가는 날 줄넘기하며 신나게 놀았다. 2년 뒤 아버지(이창섭)가 데려온 대모(계모)를 죽은 엄마인 줄 알고 15세까지 살았다니 믿어도 될 말인지 모르겠다. “열 다섯 되던 해 봄, 어머니 묘에 가 땅을 치면서 통곡했습니다. 진달래와 할미꽃이 피면 온다더니 왜 아주 가 버렸느냐구……. 실신 지경에 이르렀는지 순간 정신이 아마득해 지더군요. 그러고는 꿈결 같은 어머니 품에 안겨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 뒤 ‘처녀 이선비’는 열 여덟 살 먹어 7년 연상의 신랑한테 시집 갔고 신방도 못 꾸민 채 피난길을 떠났다. 뱃길로 몇 날 며칠 만에 목포에 닿아 광주, 보성, 벌교, 고흥 등지를 거지처럼 전전하며 김포에서도 살다가 21세 때 인천 화수동에 정착했다. 안팎(부부) 머슴살이로부터 새우젓, 연탄, 풀빵, 생선, 옷 장사 등 골고루 해 보았다. 이북 땅에서 부모형제는 함께 나오지 못했지만 늘 신랑이 곁에 있어서 살 만한 나날이었다고 한다. “스물 일곱 되던 해 늦가을이었습니다. 채독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 병원에 가 보니 폐병 4기래요. 죽으러 집으로 돌아온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빨간 말을 탄 신선이 흰 말을 끌고 오며 ‘이선비는 빨리 나와 이 말을 타라’하고 호령해요. 하도 무서워 빈 안장에 앉았더니 하늘을 훨훨 날아 어디론가 갔습니다.” 이날 이후 이씨 몸은 불덩이같이 뜨거워지며 백약이 무효였다. 어느 날은 까무라쳐 하루를 깨어나지 않자 거적에 둘둘 말아 윗목에 처박아 두기도 했다. “이웃에 살던 ‘용당포 할머니’ 손을 잡고 만신집엘 찾아가 신령님한테 절하고 나니 씻은 듯이 나아요. 유씨 할머니였습니다. 갑자기 눈 앞이 맑아지고 사람만 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씨부리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이씨는 이듬해 2월 14일 치마를 걸립해다가 유씨 할머니한테 내림굿을 했다. 28세였다. 이후부터는 입만 떨어지면 영험 있는 소리였고 그의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인천 교동도에 살던 장보배(張寶拜) 할머니(1991년 12월 타계)와 유씨 신어머니와는 신(神)동기간이어서 같이 굿판에 서고 기능도 전수받았다. “두 신어머니와 연평도에서 한 달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축시(새벽 1시~3시) 지극 정성을 드리며 천기를 깨닫고 보게 됐어요. 매년 2월 7일(음력) 별자리를 보면 풍년인지, 흉년 들지도 보입니다. 이른 봄 꽃 색깔이 곱지 않으면 한여름이 편치를 못하고……. 모두가 ‘그럴 것 같아서’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지 내 맘대로 꾸미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꼭 들어맞는 것이다. ‘과부가 되면 그 집 문턱이라도 베고 죽지만 무당은 지나가는 거렁뱅이한테도 절해야 하는 신세’라고 했다. “영감과 싸움도 많이 했지요. 점을 보러 온 사내들이 모두 나를 보러 왔다는 거예요. 하도 답답해 소실을 하나 얻으랬더니 ‘정이 하나지 둘이냐’고 펄펄 뛰었습니다. 모두가 지난 얘기지만 ‘이 짓’을 그만두려고 ‘별 짓’을 다해 보았지만 뜻대로 안 됐어요.” 이씨의 신아들인 김광원씨도 기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국민학교를 졸업하기 전 집을 나와 공사장 잡역부, 행상, 기사 식당 등 안 해본 게 없지만 되는 일이라곤 없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야행증(한밤 중 자신도 모르게 쏘다니는 병)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장본인이다. 미쳤던 것이다. 김씨는 최근까지도 완전하지는 않으나 신어머니(이선비)를 만나 남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강신무의 대는 또 이어지고 있었다. 남자에게서는 좀처럼 내려지지 않는 접신 현상이기도 하다. 이씨는 두 신어머니한테 배운 대로만 굿하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한다. 감응신령만 부르면 얼른 튀어나와 일거수 일투족을 행해 준다. 그 때는 이미 ‘인간 이선비’가 아니다. 산천굿, 초부정굿, 초감응굿, 칠성굿, 제석굿, 성주굿, 별신굿, 고려장굿 등 그가 기억해 내는 열 두거리 유형굿은 정확한 사설과 문서를 따지기 이전에 놀라운 기의 부림이라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내 집 찾아 문을 들어서는 사람에게 기를 쏘면 그대로 드러나요. 38년째 남의 사정 들어 주며 살아 오지만 나 자신도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와 화성에 여행가게 될 세상에 ‘무당 얘길 어찌 믿느냐’겠지만 이씨를 찾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만 간다. 그렇다면 소 여물을 써는 시퍼런 작두날 위에서 맨발로 춤춰도 발바닥이 성한 연유는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어떤 양반이 그래요. 내 이름자의 한문 뜻이 ‘먼저 선’와 ‘죽은 어미 비’라구요.”<세계일보>, 이규원, 1993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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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평산소놀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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