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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율탈춤

작품/자료명
은율탈춤
지정여부
김춘신(헛목,상좌,의상제작), 민남순(노승새맥시,상좌,악사)
구분
탈춤
흐름
은율은 옛부터 ‘놀탈’이 센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봄과 여름에는 절놀이 온정(溫井)놀이가 성하여 이러한 지방의 분위기 속에서 중년 이상의 부인들 중에는 자진하여 팔목중춤에 끼어들어 남자들과 함께 춤을 추는 예도 적지 않았다. 은율탈춤의 연희자들은 은율토박이들로서 연희자들의 생업은 농업이 주였으나 읍내의 한량들인 말하자면, 반농반예(半農半藝)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용수(裝龍秀)의 증언에 의하면 은율탈춤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300년 전에 나라를 피해 섬으로 갔던 사람들이 섬에서 나오면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 탈을 쓴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전할 뿐이라고 한다.
은율탈춤의 연희시기 및 장소
은율탈춤 역시 다른 황해도 지역의 탈춤들과 마찬가지로 단오에 2~3일 동안 계속해서 놀았고, 그 밖에 4월 초파일 놀이와 7일 백중(百中)놀이로도 놀았다. 은율군수나 유지들의 초청으로 놀 때도 있었으나 단오놀이가 중심이 되었는데 낮에는 씨름과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고 밤에는 솜방망이에 석유를 묻혀 불을 피워 놓고(전에는 모닥불) 탈놀이를 하였다. 탈판은 원형의 야외무대로 윗 쪽에 악사석이 있고, 가운데가 탈판이며, 둘레에 일반 관람석으로 빈 공간이 있고, 또 통나무로 기둥과 마루를 깔고 그 위에 멍석같은 자리를 깐 다락 관객석이 설치되었다. 다락석은 칸막이 없이 되었고 좌석은 전단에서 후단으로 2m 가량의 높이로 경사지게 하였다. 이 다락의 동, 서, 남 세 곳에 출입구를 만들고 악사석 가까이 왼쪽에 천으로 칸막이를 하여 개복청을 만들었다. 다락의 자리수는 500~600석 정도이며 상인들에게 그 권리를 내맡기고 탈놀이 비용의 일부를 분담시켰다. 또 유지들에게서도 그 재력에 따라 1원에서 5원까지 분담시켰고 읍내 사람들도 조금씩 분담하였다고 한다. 일반 관람객은 다락 앞 탈판 둘레의 땅바닥에 멍석을 깔고 앉아 구경하였다. 놀이는 보통 저녁을 먹고난 뒤 어두워서 시작하면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는데 구경꾼들이 함께 뛰어들어 소리하고 춤추노라면 짧은 초여름 밤이라 새벽 4시가 되면 날이 새는데 그때까지 놀았다고 한다.
탈춤의 구성형식과 내용
은율탈춤은 서부평야 지대의 끝부분에 위치한 지리적 환경과 봉산과 해주와의 상호교류와 영향 관계에서 그 특징이 나타난 것 같다. 은율탈춤의 연출방식도 다른 탈춤과 비슷하며, 춤은 봉산탈춤의 깨끼춤에 가깝다. 그러나 봉산탈춤의 다리동작이 바깥쪽으로 발을 옆으로 젖히고 강령탈춤은 발끝을 위로 드나, 은율탈춤은 발을 옆으로 젖히지 않고 앞으로 바로 하고 다리를 직선으로 하여 상하로 움직인다. 헛목(상좌)춤은 염불곡에 맞추어 추나 팔목중춤은 타령곡과 굿거리의 한 변주곡으로 보여지는 굿거리보다 빠른 돔부리장단으로 추어진다. 양반춤은 돌장단으로 추는 대목이 있고, 노승은 염불과 타령곡으로 추고 영감도 돔부리장단으로 추는 대목이 있다. 돔부리장단과 돌장단이라는 장단 이름이 따로 쓰여지는 것이 은율탈춤 장단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목중들의 등퇴장도 봉산탈춤처럼 차례로 하나씩 때려서 쫓고 나중에 다시 불러들여 무동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팔목중이 차례로 등장하여 춤을 추고 나서 그대로 탈판에 남아있다가 나중에 함께 무동춤을 춘다. 춤사위는 봉산탈춤과 비슷하여 큰 차이가 없다. 팔목중의 외사위, 곱사위, 양사위, 만사위, 도무, 뭇동춤, 최괄이의 깨끼춤, 미얄의 궁둥이춤 등을 들 수 있으나 춤사위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은율탈춤은 놀이과장의 순서나 그 극본의 내용에 있어서는 대체로 봉산탈춤보다는 강령탈춤에 가깝다. 제1과장 사자춤 몸체 속에 세 사람이 들어가는 흰 사자가 등장하여 타령과 잦은 돔부리장단 등에 맞추어 한바탕 춤을 춘다. 제2과장 헛목(상좌)춤 헛목이 나와서 염불곡에 맞추어 사방에 배례하는 춤을 춘다. 제3과장 팔목중춤 첫째 목중부터 나와서 제각기의 대사를 외우고 그대로 탈판에 남아있다가 여덟째 목중이 나오면 전원이 무동춤을 춘다. 대사는 절간에서 수도하고 있던 중들이 세속에 이끌려 놀이판에 내려왔음을 말하고 파계승임을 나타낸다. 제4과장 양반춤 먼저 말뚝이가 나타나 한바탕 춤을 추고 퇴장하면 양반 삼형제가 등장한다. 다시 말뚝이가 나타나 팔도강산 구경하던 내력을 말하고 한참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그제서야 양반들이 종을 찾았다고 말뚝이를 부른다. 말뚝이는 주인들을 깔아 뭉개고, 셋째 양반이 불러준 새맥시와 놀아나다 원숭이가 나타나자 퇴장하고 새맥시는 원숭이와 음란한 짓을 하여 아이를 낳는다. 이때 최괄이가 나타나 자기 아이라고 하고 꼬뚝이 타령을 불러주고 한참 아이를 어르다가 새맥시와 함께 퇴장한다. 제5과장 노승춤 다른 탈춤에서는 목중춤에 이어 노승과장이 오는 것이 보통이나 그것이 바뀌어져 있다. 노승이 국화주에 취하여 산에서 내려오면서 중타령과 진언(眞言)을 소리 내어 부른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말뚝이와 목중이 새맥시를 불러 노승을 유혹하여 파계시킨다. 노승이 말뚝이와 목중을 때려서 내쫓자 최괄이가 등장하여 노승과 겨루고 새맥시를 빼앗고 음란한 춤으로 어울린다. 다른 탈춤에서는 노승은 종시 무언이나 은율탈춤에서만은 노승이 중타령을 하는 것이 특색이다. 제6과장 영감할미춤 영감이 팔도유람을 다니고 있을 때 할미가 영감을 찾아다니다가 서로 만난다. 할미가 반가워 할 때 영감의 첩인 뚱딴지집이 나타나 서로 자기의 영감이라고 다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최괄이와 말뚝이가 나와 진짜 본부인 여부를 판가름하여 준다. 그러나 화가 난 뚱단지집이 할미의 뒷덜미를 잡고 마구 때려 죽게 한다. 죽은 할미가 극락세계 좋은 곳으로 가라고 지노귀굿을 함으로써 놀이를 끝내고 출연자 전원이 무동춤을 추고 끝낸다.
가면과 의상 및 소도구
헛목(상좌) - 흰 바탕에 눈썹은 반달형으로 그렸고, 흰 바지저고리 행전에 흰 장삼을 입고 흰 고깔을 쓰고 홍띠와 홍가사를 맨다. 목중 8개 - 가면은 붉은색 바탕에 이마와 양 볼에 혹은 3개이고 혹에 5색의 선을 그렸다. 중앙으로부터 황금색, 녹색, 붉은색, 흰색, 검정색이다. 구름무늬의 눈썹을 그렸다. 가면의 모습은 여덟째 목중까지 같으나 의상은 각각 달라서 첫째 목중이 붉은색 더거리, 황색 띠, 흰색 고깔, 긴 한삼을 단다. 둘째 목중은 청색 더거리에 황색 띠, 셋째 목중은 흰색 더거리에 황색 띠, 넷째 목중은 자주색 더거리에 황색 띠, 다섯째 목중은 황금색 더거리에 황색 띠, 여섯째 목중은 녹색 더거리에 황색 띠, 일곱째 목중은 칠단(七段)색 더거리에 황색 띠, 여덟째 목중은 남색 더거리에 황색 띠를 맨다. 말뚝이(마부 겸용) - 붉은 바탕의 가면에 이마에 2개, 양 볼에 2개씩 모두 6개의 혹이 있고 혹에는 5색 선을 둘렀다. 벙거지를 쓰고 채찍을 들고 검은 더거리에 좌측 다리에는 왕방울을 차고 좌청, 우홍의 윗대님을 맨다. 맏양반 - 흰 바탕 얼굴에 수염을 달고, 혹은 4개이고 5색 선을 그렸다. 유건을 썼으며, 삿부채를 들고 도포를 입는다. 둘째 양반 - 흰색 바탕 얼굴에 검은 수염, 혹은 3개이고 5색 선을 그렸다. 정자관을 쓰고 도포를 입고, 삿부채를 들었다. 셋째 양반(병신양반) - 흰색 바탕에 입은 좌측으로 비뚤어졌다. 혹은 이마와 양 볼에 3개이고 혹에 5색 선을 그렸다. 의상은 총감투를 쓰고 옥색 도포에 삿부채를 들었다. 새맥시(뚱단지집 겸용) - 흰 바탕에 눈썹은 반달형이고 얼굴엔 연지곤지를 찍고 족두리를 썼다. 옥색 저고리에 홍치마를 입는다. 원숭이 - 붉은색 바탕에 얼굴 전체에 털을 달았다. 전신에 붉은색 옷을 입는다. 노승 - 회색 바탕에 입술은 붉고 굵은 테를 돌렸다. 이마에 혹 3개, 양 볼에 2개, 모두 5개이고 5색 선을 그렸다. 의상은 회색 장삼, 붉은 가사, 회색 바지 저고리에 송낙을 쓰고 염주를 목에 걸고 목탁을 허리에 차고 육환장을 짚는다. 최괄이 - 붉은색 바탕에 혹은 4개이고 혹에는 5색 선을 돌렸다. 머리에는 개미 상투가 달렸고 좌청, 우홍의 윗대님을 매고, 좌청, 우홍의 더거리를 입는다. 영감 - 흰색 바탕에 흰 수염이고 혹은 3개이며 혹에 5색 선을 그렸다. 머리엔 갓을 썼으며 담뱃대와 삿부채를 든다. 할미 - 검은 바탕에 희고 붉은 반점이 무수히 찍혔으며, 눈자위 부분만 흰색이다. 손에 흰 수건을 들고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는다. 무당 - 탈은 헛목과 같다. 이마에 자색 띠를 두른다. 노랑저고리에 홍치마, 남색 쾌자를 입고 허리에 붉은 띠를 맨다. 검은 전립을 쓰고 한 손에 방울, 한 손에 부채, 신칼도 사용하고 무명필을 들게 하고 길가름도 한다. 사자 - 큰 대소쿠리에 종이를 바르고 노란 바탕에 검은 점과 검은 수염을 그렸으며 눈은 황금색을 칠하고 입술은 붉다. 사자몸체와 같은 색의 행전을 치고 세 사람이 사자 속에 들어가 움직인다. 가면은 노승, 말뚝이, 최괄이, 마부, 복중 탈들은 각각 혹이 있는 ‘목탈’(귀면형,鬼面型)이고 혹에는 5색 띠를 돌려 벽사성(辟邪性)을 나타낸 듯 하다. 새맥시, 헛목, 뚱단지집, 할미 탈들은 ‘인물탈’(사실면,寫實面)로 해주와 강령탈에 가깝다. 노승탈은 검지 않고 흰 것이 특징이다.
전승자 정보
은율탈춤의 복원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장용수로 그는 은율 출신의 놀이꾼이었던 장교헌을 만나 그때부터 옛 춤이나 놀이의 구성, 재담의 채록 등에 장교헌, 양소운과 더불어 복원에 힘썼다. 은율탈춤의 명연희자로 탈춤을 잘 가르쳐 유일하게 선생님이라 불린 조병모(趙炳模)는 헛목(일명 상좌)를 잘 추었고 소리도 잘하였다고 하는데, 장용수는 그에게서 소리와 탈춤을 배웠다고 한다. 장용수와 함께 은율탈춤 복원에 힘쓴 장교헌 역시 조병모에게 배웠으며, 노승, 헛목, 말뚝이역을 잘 하였다.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장용수(영감, 양반, 가면제작), 김춘신(金春信, 헛목, 상좌, 의상제작)가 보유자 인정을 받았고, 1982년에 김영택(金永澤, 1921년생, 악사)이 추가 인정되었다.
연계정보
· 재구성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관련도서
<탈춤>, 채희완 저, 김문호 사진, 대원사, 1992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관련사이트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_주요공연_탈춤공연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사이트
은율탈춤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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