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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줄다리기

작품/자료명
영산줄다리기
지정여부
김종곤(金淙坤, 줄제작)
구분
민속놀이
흐름
줄다리기는 우리 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일대에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는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특히 농경 사회에서 발달하였고, 용사(龍蛇)신앙에 바탕을 둔 농경 의례 놀이로서 용을 상징하는 암줄과 숫줄의 상징적 성행위를 통해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한편으로는 풍년을 기원하는 한편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마을 공동체 대항 민속놀이다. 우리 나라의 줄다리기는 마을 단위의 소규모 줄다리기와 큰 시장이나 고을들의 규모가 큰 줄다리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영산 줄다리기는 규모가 큰 고을 줄다리기 가운데 하나이다. 영산줄다리기에 대한 유래는 이에 관한 기록이 없으므로 어느 때 어떤 목적으로 비롯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 있어서 줄다리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줄다리기로 보이는 제주도의 조리희(照里戱)가 500여 년 전부터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 전부터 이 땅에 줄다리기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줄다리기는 벼농사 문화권에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거나 풍년을 축원하는 놀이로 행해지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도 벼농사 문화와 더불어 비롯된 것을 여겨지며 영산 줄다리기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영산줄다리기의 연희시기 및 장소
영산줄다리기는 본래 음력 정월 대보름밤에 넓은 보리밭에서 행해졌었다. 오늘날에는 보리밭이 줄어 들었고 많은 사람이 모일수 있는 영산중학교 운동장 또는 놀이마당에서 매년 3월 1일 ‘3·1 문화제’의 일부로 행해지고 있다.
영산줄다리기의 구성 및 내용
정월 대보름날이 다가오면 마을 청소년들은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짚단을 얻어 모은다. 짚단이 모아지면 둘레 25㎝ 정도의 가닥줄을 만들고 이것으로 몸줄과 벗줄을 만든다. 완성된 줄은 길이가 40여 m에 이르고 그 둘레는 사람이 줄을 타고 앉아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의 크기다. 양편의 줄은 형태상으로는 차이가 없다. 다만 암줄인 서부의 목줄 고리가 숫줄인 동부의 고리보다 크다. 암줄 목줄 고리에 숫줄 목줄을 넣어서 비녀목을 꽂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보름날 오후가 되면 동부군과 서부군은 미리 만들어진 줄 위에 각각 소장, 중장, 대장들을 태우고 결전장으로 향한다. 운동장에 다다르면 전의를 가다듬는다. 운동장 서쪽에 자리잡은 서부와 반대편의 동부는 각각 서낭대, 두 서너패의 풍물패, 소를 타고 칼춤을 추는 장군들, 이들의 호위군, 50여 개의 깃발, 그리고 영기를 흔들면서 기세를 돋운다. 양군의 행렬이 운동장을 돌다가 거리가 좁아지면 갑자기 흥분하여 욕설과 주먹질 발길질을 하는가 하면 깃대로 내려치기도 하며 놀이판의 열기가 오른다. 줄다리기는 일종의 성행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여성으로 상징되는 서부 암줄과 남성으로 상징되는 동부 숫줄이 서로 먼저 나서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암숫줄이 걸렸다는 신호와 더불어 당기기를 시작한다. 함성소리와 함께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하늘을 덮고 풍물패 소리와 놀이꾼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른다. 여성을 상징하는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줄다리기가 끝나면 놀이꾼과 관중들은 이긴 서부의 줄을 풀어 한 웅큼씩 가져간다. 이긴 편의 짚을 지붕 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고 관운이 트이고 집안에 행운이 오며, 또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용마루에 올려놓으면 액막이가 되고, 썰어서 소를 먹이면 살이 찌고, 거름으로 쓰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다투어 가져간다.
영산줄다리기의 의상 및 소도구
대장, 중장, 소장 등의 장군들은 조선조의 군복차림으로 칼춤을 춘다. 이전에는 구한말의 서구식 군복을 입었다 한다.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 이러한 군복들도 다 조선시기 군복차림으로 바뀌었다. 소도구로는 나무쇠 앞에 양군을 상징하는 서낭대와 대장기, 중장기, 소장기, 오방장군기, 농기, 영기 등 수십 개의 깃발이 있으며, 풍물패도 대형이기 때문에 많은 사물이 있어야 한다.
전승자 정보
영산줄다리기는 영산쇠머리대기와 함께 3·1문화제의 일환으로 매년 열리고 있으며, 1969년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현재는 줄제작 기능보유자인 김종곤이 전승에 힘쓰고 있다.
연계정보
· 재구성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관련도서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편, 민족문화사, 1991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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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무악닷컴_전통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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