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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탈춤

작품/자료명
강령탈춤
지정여부
김실자(둘째 양반, 마부), 김정순(상좌, 용산삼개집), 이정석(미얄영감), 송용태(취발이)
구분
탈춤
흐름
강령탈춤은 황해도 옹진군(甕津郡) 부민면(富民面) 강령리에 전해오던 탈놀음으로 산대도감극의 서북형에 속하는 탈춤 가운데 해주(海州) 탈춤형에 속하는 탈놀이다.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면서 해주감영 소속의 교방(敎坊) 가무인들이 해산되고 통인청을 중심으로 모였던 탈꾼들 역시 해산되면서 그 일부가 강령으로 모여들었고 특히 강령태생 관기로 옥관자를 탄 것으로 유명한 김금옥(金錦玉)이 고향으로 은퇴하자 그를 따라 많은 가무인들이 강령으로 모여들어 탈춤도 함께 성행되었다고 전한다. 강령 부근에 오랜 전통을 가진 재인(才人) 마을인 용천리(龍泉里)가 인접해 있어서 탈춤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고 한다. 매년 5월 단오놀이로 연행되던 강령탈춤은 1920년대에 이르러 점차 쇠퇴일로를 걷다가 중단되고 말았다. 1938년 10월에 상경하여 부민관에서 공연한 바도 있으나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고, 광복 후 1948년과 1950년에 공연한 바 있으나 본고장에서의 전승은 끊기고 말았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강령탈춤의 복원은 1969년에 월남한 오인관(吳仁寬, 1901~1971)을 중심으로 박동신, 양소운, 지관용, 김지옥 등이 참여하였다. 이 중 유일하게 강령탈춤의 옛 놀이꾼이었던 오인관은 김익여(金益汝, 맏양반역)와 송귀염(말뚝이역)에게서 배웠다.
연희시기 및 연희장소
강령탈춤도 역시 다른 지방의 황해도탈춤과 마찬가지로 5월 단오놀이로 연행되어왔으며, 5월 6~8일간은 해주감영에 나가 도내 각 지역에서 모인 여러 탈춤패들과 경연하였는데 우승을 하면 감사에게서 돈 천냥과 그 주장에게 해주 명기가 하룻밤 수청을 들었다고 한다. 단오가 지난 후 10일 만에 뒤풀이라고 하여 이 놀이가 다시 연희되고, 그 후는 모든 탈을 태워 버렸지만 근래에는 산주집에 보관하였다가 다시 사용했다고 한다. 강령탈춤의 놀이판은 팔경대(八景臺)로 길놀이는 팔경대에서 출발하여 서부 마을, 동부 마을을 한바퀴 돌아 팔경대로 돌아와서 탈놀이를 시작한다. 팔경대는 강령보통학교 뒤 기와지붕의 누각인데 그 앞에 악사석을 마련된다. 탈판 둘레에 반월형의 다락을 만들어 객석을 마련하고 탈판 뒤에 씨름판과 그네터가 마련되었다.
탈춤의 구성형식과 내용
강령탈춤과 봉산탈춤의 차이는 의상과 춤에서 살펴보면 첫째, 의상을 보면 강령과 해주탈춤에서는 주로 회색 칡베 장삼을 공통으로 입고, 그 소매 홍태기는 길어서 팔을 내리면 땅에 닿을 정도인데 비해 봉산탈춤의 기본 의상은 좌청우홍(左靑右紅)의 원동에 초록색 소매를 단 더거리를 입는다. 이러한 화려한 더거리에 붉고 푸른 띠를 매며 소매에는 흰 한삼을 단다. 둘째, 춤에 있어서 강령탈춤은 느린 사위로 긴 장삼 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동작의 춤을 추는데 이것을 ‘장삼춤’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봉산탈춤은 장삼소매를 휘어잡고 뿌리거나 혹은 손목에 드린 한삼을 경쾌하게 휘뿌리면서 빠른 사위로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하는 ‘깨끼춤’을 춘다. 제1과장 사자춤 길놀이에 해당하는 과장으로 2명의 말뚝이가 사자를 몰고 원숭이가 뒤따른다. 이어 목중, 상좌, 노승, 소무, 취발이, 양반 4명, 영감, 할미, 용산삼개집, 남강노인, 마부, 악공(6명)의 순으로 서서 서부 마을과 동부 마을을 돌고 팔경대의 탈판으로 들어온다. 사자와 말뚝이, 원숭이가 장내를 정리하고 한바탕 춤을 추고 나서 퇴장한다. 근래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등장한다. 제2과장 말뚝이춤 말뚝이 두 명이 나와 상대방을 보고 의아해 하며 서로 겨루는 듯이 대무하다가 나중에 화해하여 기쁨의 춤을 춘다. 다른 탈춤과는 달리 말뚝이 2명이 등장하는 것이 특이하며 가장 힘차고 동작이 큰 춤이며, 기본적인 춤사위를 갖춘 춤이다.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말뚝이와 쇠뚝이가 등장하는데 그것과 비교될지 모르겠다. 제3과장 목중춤 목중 하나가 나와 춤을 추고 나서 자기소개로 육관대사의 제자로서 환산길에 석교상 좁은 길로 잠깐 들러 수도공덕하는 뜻을 말한다. 목중 2가 나와 목중 1을 때려 내쫓고 중타령을 하며 도드리 타령 굿거리 춤을 추고 들어간다. 제4과장 상좌춤 상좌 둘이 윗 쪽과 아래 쪽에서 등장하여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보며 춤을 춘다. 도드리타령 굿거리에 맞춰 춤을 추고 퇴장한다. 벽사(辟邪)의 춤이며, 다른 탈춤처럼 첫 과장에서 추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제5과장 양반춤 맏양반, 둘째 양반, 셋째 양반(재물대감), 도령이 말뚝이와 더불어 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한다. 개가죽 관을 쓴 맏양반은 개(犬)에게도 오륜(五倫)이 있음을 강조하고 스스로 양반과 개를 동일시하는 듯한 대사를 하고, 둘째 양반은 양반의 근본을 효행과 충절에 있음을 표현하나 횡설수설로 일관성이 없으며, 셋째 양반은 양반의 근본이라면서 재물대감이 내려 무당의 만수방이를 읊조리고, 거지들의 장타령을 하고 망신살을 보인다. 맏양반의 아들 도령도 대사는 없으나 재물대감을 쫓아다니면서 천방지축으로 행동하여 망신스럽게 군다. 말뚝이는 노새를 노새안님이라 하여 양반을 놀림으로써 양반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말뚝이의 비판의식이 드러난다. 제6과장 목중춤 목중 하나가 나와 도드리 타령곡에 맞춰 한참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제7과장 영감할미 광대춤 고향을 떠나 방랑하던 영감이 용산삼개집이란 주모를 만나 새 생활을 즐기는 사이 할미는 영감을 애타게 찾아 다니다가 상봉하지만 용산삼개집의 할미에 대한 불손한 태도로 말미암아 가정불화가 생겨 할미를 쫓아낸다. 이본(異本)에 따라서는 할미가 물에 빠져 죽고 그 넋을 위한 지노귀굿을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제7과장과 제8과장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제8과장 제1경 팔목중춤 여덟 목중이 차례로 등장하여 타령에 맞춰 춤을 춘다(팔목중은 목중 2명, 말뚝이 2명, 마부 2명, 남강노인, 취발이까지 전원 팔목중역으로 등장한다). 질탕하게 춤을 추고 성주풀이조의 노래를 부르며 논다. 이윽고 노승이 상좌에게 이끌려 등장하여 엎드리면 팔목중들이 차례로 살피고 노승임을 알고 소무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 목중들이 퇴장한 뒤 노승은 노무를 발견하고 온갖 수단으로 유혹하는 무언극이 진행된다. 제2경 취발이춤 천하의 한량 취발이가 등장하여 소무를 사이에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여 노승을 쫓아낸다. 소무와 놀아난 취발이는 아들을 얻고, 천자문과 언문 뒷풀이를 가르치고, 사랑가를 부르며 아이를 안고 퇴장한다.
탈과 의상 및 소도구
말뚝이 2개 - 붉은 바탕에 머리와 눈, 눈썹 가장자리를 검은 선으로 그렸으며, 입술은 붉게 칠하고 눈자위는 흰색을 칠하고, 양 볼과 이마와 턱에 혹이 있고 혹에는 금칠을 하였다. 털보는 삼베로 하였다. 의상은 붉은 색 원동에 색동 소매에 흰 한삼 달린 더거리에 흰 바지 입고, 윗대님을 좌청, 우홍으로 치고, 황색을 띠고, 허리 뒤에 왕방울을 찼다. 사자 2마리 - 대소쿠리에 종이를 발라 주황색 칠을 하고, 눈과 입 가장자리는 검은 선으로 그렸고, 양 볼에 금색을 칠한 혹이 있다. 얼굴 전면에 흑, 백, 금색으로 반점을 그렸다. 흰 사자이며 턱 아래에는 붉은 털이 달렸다. 원숭이 - 붉은 색 얼굴 가장자리에 개털을 달았고 이마, 턱, 콧수염은 토끼털을 붙였다. 얼굴전면에 백, 금색의 반점을 찍었고 눈과 코는 뚫렸다. 붉은 색 원동에 남색 소매를 달고 붉은 색바지를 입었다. 목중 2개 - 붉은 색 바탕에 머리와 눈썹,수염,눈 가장자리를 검은 색으로 그렸으며 눈자위는 흰색으로 칠하고 검은 선 안에 금색으로 칠했다. 이마에 금색 점이 14개 찍혔으며 눈과 입은 뚫렸다. 칠베 회색 장삼에 붉은 띠를 매고 염주를 목에 걸었다. 상좌 2개 - 흰색 바탕에 머리와 눈썹, 눈 가장자리를 검은 색으로 그렸다. 입술은 붉게 칠하였다. 흰 장삼에 흰 바지, 붉은 가사를 어깨에 메고 미투리 신고 고깔을 썼다. 염주를 목에 건다. 마부(말뚝이역) 2개 - 주황색 얼굴에 머리와 눈썹, 눈 가장자리를 검은색으로 그렸고, 눈자위를 흰색으로 칠하고 검은 선 안쪽은 금색으로 칠했다. 혹이 여러 개 있고 끝에 금색을 칠했다. 검은 더거리에 흰 바지 입고 행전을 쳤다. 벙거지를 쓴다. 맏양반 - 흰색 얼굴에 검은색으로 머리와 눈, 이마에 망건을 그렸고 흰 토끼털로 눈썹·수염을 달았다. 칠베 회색 장삼에 옥색 솔띠, 부채와 지팡이를 들고 머리에는 개가죽 관을 썼다. 둘째 양반 - 맏양반과 같은 흰색이나 코밑의 한쪽이 붉은 색으로 언청이를 그렸으며 수염은 검다. 셋째 양반(일명 재물대감) - 맏영감 탈과 같으나 흰 장사과 흰 바지에 화선(花扇)을 들고 남색 쾌자를 걸치고 빛갓(紅笠)을 써 박수무당(화랭이)임을 나타낸다. 도령 - 흰 얼굴 바탕에 머리와 눈, 눈썹을 검은 선으로 그렸고 입술은 붉다. 옥색 두루마기에 남색 쾌자를 입고 붉은 술띠에 흰 부채를 들고 머리에는 복건을 썼다. 영감 - 흰색 바탕에 머리와 망건, 눈, 눈썹을 그렸으며 눈썹은 토끼털로 붙였고 수염은 쇠꼬리털로 단다. 회색 칠베장삼 입고 개가죽 관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흰 부채를 들었다. 용산삼개집 - 소무와 공용. 왼손에 수건, 바른손에 화선(花扇)을 든다. 할미광대 - 검은색 바탕에 얼굴 전면에 백색과 금색 반점을 무수히 찍었다. 양 볼에 혹이 있으며 끝에 금색 칠을 하였다. 흰 치마 저고리에 허리 뒤에 왕방울과 헌 짚신을 찼다. 왼손에 방울달린 지팡이를 들고 바른손에 꽃부채를 들었다. 남강노인(남극노인) - 살색보다 약간 붉은 얼굴에 이마가 길며 이마에 길게 상(上)자를 붉은 색으로 그렸다. 흰 바지 저고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흰 부채를 든다. 소무 - 흰색 바탕에 머리와 눈, 눈썹을 검은색으로 그렸고 눈 가장자리 안에 금색 선을 그렸다. 입술은 붉게 칠하고 이마와 양 볼에 연지곤지를 찍었다. 노랑 저고리에 빨간 치마, 남색 쾌자를 입고 색동소매 끝에 흰 한삼을 달았다. 노승 - 검은색 얼굴에 검은 선으로 눈썹과 눈 가장자리를 그렸고 흰 눈자위를 칠하고 금색으로 눈 둘레를 그렸다. 이마에 금색 선이 세 줄, 턱에 금색 반점이 세 개 있다. 입술은 붉고 크며, 이마와 턱이 나왔다. 칠베 회색 장삼에 회색 바지를 입고, 염주와 붉은 가사를 메고 육환장에 꽃부채를 들고 송낙을 썼다. 취발이 - 붉은색 얼굴바탕에 검은 선으로 머리와 눈썹, 눈가장자리를 그렸으며 눈자위는 흰색을 칠하고 금색 선으로 둘레를 그렸다. 이마에 금색으로 두 개의 선을 주름으로 그렸고 턱과 이마에 금색을 칠한 혹이 있다. 이마에는 쇠꼬리털로 만든 머리를 풀어 달았다. 붉은색 더거리에는 둥근 은박의 큰 점이 달렸고 흰 한삼, 흰 바지에 행전을 치고 허리 뒤에 왕방울을 차고 버드나무 가지를 들었다.
전승자 정보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강령탈춤은 6·25 이후 월남한 오인관을 중심으로 박동신, 양소운, 지관용, 김지옥 등이 참여하여 복원하였고 1970년 7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 예능보유자로 인정 받은 사람은 오인관(말뚝이, 사자역), 양소운(할미역), 김지옥(맏양반, 목중역), 박동신(악사), 지관용(악사) 등이었으나 양소운은 봉산탈춤 보유자로 변경되었다. 지금은 김실자(金實子, 둘째 양반, 마부), 김정순(金正順, 상좌, 용산삼개집), 이정석(李貞錫, 미얄영감), 송용태(宋龍台, 취발이) 등이 강령탈춤 전승에 힘쓰고 있다.
연계정보
· 재구성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관련도서
<강령탈춤>, 김실자·김정순, 강령탈춤보존회, 1995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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