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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작품/자료명
강강술래
지정여부
박용순, 박양애, 박종숙, 차영순, 김종심
구분
민속놀이
흐름
강강술래는 남해안 일대와 도서 지방에 널리 분포하여 전승되고 있는 집단놀이로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부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가무일체(歌舞一體)의 놀이이다. 전라도의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경상도의 영일, 의성, 북쪽으로는 황해도 연백까지 분포되어 있었으며, 현재는 전라남도의 해남, 완도, 무안, 진도 등지에서 주로 전승되고 있어 굳이 전라남도 지방의 민속놀이라기보다는 전국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강술래가 언제 어떻게 하여 시작되었는지 유래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두 가지의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삼한시대 오월제와 시월제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으로 <삼국지위지마한전(三國志魏志馬韓傳)>에 의하면 5월의 기풍제(祈豊祭)와 10월의 추수감사제를 신에게 올렸는데 사람들이 모여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셨다고 되어 있다. 이 때 수십 명이 함께 춤을 추는데 다같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가락에 맞추어 손발을 맞추며 몸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땅을 밟는다고 하였다. 즉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뛰노는 원무(圓舞)는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부터 있었던 것이고 이 전통이 이어져 오늘날의 강강술래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의견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왜군에게 우리의 병사가 많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의병술로 마을의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 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을 돌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나 아직 근거가 될 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옛날부터 내려오던 강강술래 놀이를 이순신 장군이 의병술로 활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 농경 시기의 파종과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 부르면서 춤을 추던 놀이 형태가 있었던 바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이 이 놀이를 의병술로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후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져 성행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내용
강강술래는 주로 8월 한가위 밤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놀아왔으나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날 밤을 비롯하여 봄, 여름, 가을 어느 때든지 달 밝은 밤에 수시로 놀았다. 놀이의 장소는 넓은 마당이나 보리밭이 이용되었다. 한가위 날 저녁밥을 먹은 뒤 달이 뜰 무렵이 되면 여인들이 모여든다. 달이 솟기 시작하면 여인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고 손을 잡는다. 목청이 좋아 소리를 잘하는 여인이 느린 가락으로 소리를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소리에 맞추어 느리게 발을 내딛고 ‘강강술래’하고 뒷소리를 부른다. 맥임소리를 하는 선창자는 사설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끝까지 후렴만 부른다. 메김소리는 점차 빨라지며, 따라서 춤도 빨라져 수십명의 부녀자들이 추석빔을 곱게 입고 뛰는 모습은 화려하고 활기차다. 강강술래는 노래 소리에 맞춰 둥글게 도는 것뿐 아니라 남생이놀이,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청어풀기, 기와밟기, 덕석말이, 문열기, 가마등, 수건찾기 등 다양한 놀이를 가지고 있고 때마다 노랫말과 가락이 다르다. 남생이 놀이 : 강강술래에서 원을 그리며 돌다가 원 안으로 두세 사람이 뛰어들어 가락에 맞추어 자유롭게 춤추면서 뛰어다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뛰어드는 동작이다. 고사리꺾기 : 원을 그리며 돌던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 앉고 맨 앞의 선두부터 일어나서 바로 뒤에 앉은 사람과 잡은 손 위로 넘어가고 또 그 뒷사람은 연이어 자기 뒷사람과 잡은 손 위로 넘어 나오는 놀이다. 청어엮기 : 원을 그리며 돌던 사람들 가운데 맨 왼쪽에 있는 사람이 노래를 하며 혼자서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옆 사람과 잡은 자신의 오른손(옆 사람은 왼손)을 자신의 왼쪽 어깨에 올려 놓고 다음에는 옆의 둘째 사람과 셋째 사람 사이로 들어가면 둘째 사람이 왼쪽 어깨에 손을 얹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차례로 꿰어가면 모든 사람이 왼쪽 어깨에 손을 얹게 되고 엮을 때와 반대방향으로 돌면 저절로 풀린다. 기와밟기 : 걷기를 하다 앞소리꾼이 ‘어디골 기완가’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장자 장자골 기와세’라고 받으면서 옆 사람과 잡은 손을 놓고 일렬로 간격을 좁혀 선다. 허리를 굽혀 앞사람의 왼쪽 허리 부분에 오른쪽 뺨을 대면서 두 팔로 허리를 껴안고 줄의 맨 끝에서 두 번째 사람과 세 번째 사람은 좌우로 갈라서서 맨 끝 사람이 일렬로 구부린 사람들 위로 올라서고 걸어가는데 손을 잡아준다. 다 밟고 걸어가면 내려서 맨 앞에 허리를 구부린다. 맨 끝의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하는 동작이다. 꼬리따기 :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일렬로 늘어선 다음 술래가 맨 끝의 사람을 잡아 떼는 것을 말한다. 덕석말이 : 강강수월래를 하다가 덕석을 말았다 풀었다 하는 형태로 둥근 원을 좁혔다 넓혔다 하는 동작을 말한다. 문지기놀이 : 두 사람이 양 팔을 마주 뻗쳐 잡아 문을 만들고 그 밑을 다른 놀이꾼들이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한 줄이 되어 통과하는 것을 말한다. 강강술래의 노래 가사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없고 아무 민요나 4·4조에 맞으면 부른다. 앞소리꾼은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지어서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또 같은 지방의 노래 가사라 하더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또 부를 때마다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한 번의 놀이가 끝날 때까지 내용상 특별한 관련을 갖지 않는 여러 개의 민요들이 잇달아 불리어진다. 대체로 동일지역의 노래 가사들은 비록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민요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연결 순서나 내용에 있어서만 사소한 차이가 발견된다. 이러한 현상은 노래가 앞소리꾼의 즉흥적 창작력에 의존하는 한편, 전통적으로 계승되는 큰 틀 안에서 전승됨으로써 지역적 유사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전승자 정보
강강술래는 보존회가 전승단체로 지정되어 있으며, 초대 예능보유자인 김길임의 뒤를 이어받은 박용순, 박양애, 박종숙, 차영순, 김종심 등이 전승에 힘쓰고 있다. 김길임(金吉任, 1928~1999) 김길임은 전남 해남출생으로 창으로 뛰어났던 할머니 천씨와 외할머니 전씨, 어머니 김수임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나 바로 이웃 마을인 동외리로 시집을 간 뒤 내내 우수영내에 살면서 강강술래와 함께 평생을 보냈다. 김길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장에서 강강술래를 해왔으며, 소리가 좋아 매김소리를 항상 하게 되었다. 순발력이 뛰어나 즉흥사설로 밤샘도 견딜 수 있는 매김소리의 일인자라 불렸다.
연계정보
· 재구성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강강수월래연구>, 최두환, 학민사, 1997
관련도서
<한국의 전통예술>, 심우성 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강강수월래연구>, 최두환, 학민사, 1997 <한국무용사>, 김매자, 삼신각, 1995 <한국예술사전(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편, 민족문화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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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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