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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놀이

작품/자료명
남사당놀이
지정여부
박계순(꼭두각시놀음,덧뵈기,풍물), 남기환(꼭두각시놀음,덧뵈기,풍물), 박용태(꼭두각시놀음,덧뵈기,풍물)
구분
민속놀이
흐름
꼭두쇠(우두머리)를 비롯해 최소 40명에 이르는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 예인집단인 남사당패가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놀았던 놀이를 말하며, 주로 농어촌의 성벽 밖 서민층 마을들을 돌며 모심는 계절부터 추수가 끝나는 늦은 가을까지 놀곤 하였다. 남사당놀이는 서민사회에서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로, 민중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양반들로부터 박대를 당해 마을에서 공연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였다. 남사당놀이를 놀았던 남사당패의 연원이나 역사적 형성과정은 그 기록이 너무 적어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기록이 있다 하여도 매우 부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편 남사당놀이가 조선시대의 놀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남사당패와 같은 유랑 예인집단은 그보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보여진다. 즉 우리 민족이 수렵, 유목, 농경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민중 취향의 떠돌이 민중놀이 집단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 집단은 유랑하던 끝에 하나의 예인집단으로 형성되어 각처로 떠돌면서 전문적인 예인 집단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사당패와 유사한 집단으로는 사당패(여성으로 구성되며 무리를 이끄는 모갑(남)과 사당(여)을 업고 다니며 잔일을 하는 거사(남)으로 구성되었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사당에게 있었다)와 걸립패(무리를 이끄는 화주를 중심으로 탁발, 산이, 잽이, 보살, 비나리의 조직을 가진다), 솟대쟁이패, 중광대패 등의 놀이패가 있었다. 1930년대까지 전승되었던 남사당패는 심선옥 패, 안성 복만이 패, 원육덕 패, 이원보 패 등이 있었으며, 한 때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남형우, 양도일, 최성구, 송창선 등이 1960년에 서울에서 민속극회 남사당을 재조직하면서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
남사당놀이의 종류
남사당놀이는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으로 이루어진다. 풍물은 일종의 농악놀이로 공연 시작을 알리면서 구경꾼을 유도하기 위한 놀이라고 볼 수 있다. 버나는 중국의 접시 돌리기와 비슷하게 쳇바퀴나 대접 등을 막대기나 담뱃대 등으로 돌리는 묘기이다. 살판은 오늘날의 재주 넘기와 같은 땅재주로,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름은 줄타기 곡예를 이르는 말로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것만큼 어렵다 하여 남사당패내에서만 쓰여지던 말이었으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덧뵈기는 탈을 쓰고 하는 일종의 탈놀이이다. 인형극을 이르는 덜미는 인형극에 나오는 중요등장인물에 따라 꼭두각시놀음, 박첨지놀음, 홍동지놀음이라고 부른다.
풍물
첫번째 놀이로 충청, 경기 이남지방의 웃다리가락을 시작으로 진풀이와 무동(새미), 채장(열두발 상모)등 다양한 기술의 놀이가 펼쳐진다. 인사굿이 시작된 후, 돌림벅구, 선소리판, 당산벌림, 양상치기, 허튼상치기, 오방감기, 오방풀기, 무동놀림, 쌍줄백이, 사통백이, 가새벌림, 좌우치기, 네줄백이, 마당일채, 밀치기벅구 등 판굿을 놀고, 그 다음이 상쇠놀이, 딱벅구(벅구놀이), 징놀이, 북놀이, 장고놀이, 시나위, 새미받기, 채상놀이 등이 있다.
버나(대접돌리기)
버나는 체바퀴와 대접, 대야 등을 앵두나무 막대기로 돌리는 묘기로, 예전에는 버나놀이판에 얼른(요술)이 같이 행해지기도 했다. 접시돌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버나잽이와 소리꾼인 매호씨(어릿광대)가 서로 주고 받는 재담과 소리가 있어 극적인 요소가 강하다. 돌리는 물체에 따라 대접버나, 칼버나, 자새버나, 체바퀴버나 등으로 분류된다.
살판(땅재주)
‘잘하면 살 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대광대패나 솟대쟁이패의 주된 놀이 중의 하나였으나 남사당놀이에도 유입되었다고 하며, 연희자 역시 대광대패나 솟대쟁이패에서 초빙되었다고 한다. 앞곤두, 뒷곤두, 번개곤두, 자반뒤지기, 팔걸음, 외팔걸음, 외팔곤두, 앉은뱅이 팔걸음, 수세미트리, 앉은뱅이 모말되기, 숭어뜀 등의 재주가 있으며, 살판쇠와 매호씨(어릿광대)가 재담을 주고 받으면서 잽이(악사)의 장단에 맞춰 묘기를 부린다. 기예와 재담의 구성비율은 반반으로 나타난다.
어름(줄타기)
남사당패의 어름놀이는 초청에 의하여 관가나 양반집에 불려다니던 광대줄과는 달리 일정한 보수 없이 서민들을 대상으로 순연했기 때문에 역시 민중 취향으로 짜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름산이(줄꾼)과 매호씨(어릿광대)가 재담을 주고 받으며, 줄 위에서 가창하고 잽이의 장단에 맞춰 진행된다. 앞으로 가기, 장단줄, 거미줄 놀이기, 뒤로 훑기, 콩심기, 화장사위, 처녀총각외호모거리, 허궁잽이, 가새트름, 외 허궁잽이, 쌍 허궁재빙, 양반걸음, 양반 밤나무 지키기, 녹두장군 행차 등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덧뵈기(탈춤)
덧뵈기는 덧(곱)본다는 뜻으로 탈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타 지역의 탈놀이에 비해 제의성이나 행사성에 관계 없이 그때 그때 지역민의 갈구와 흥에 부합하여 공연되었다. 춤보다는 재담과 동작이 우세하며, 양반과 상민의 갈등을 상민의 편에서 의식적인 저항의 형태로 나타낸다. 탈은 샌님, 노친네, 취발이, 말뚝이, 먹중, 옴중, 피조리, 꺽쇠, 장쇠 등이 등장하며, 바가지 위에 종이 찧은 것을 붙여 만들고 아교단청으로 색을 내어 탈의 특징을 나타낸다. 전체 4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마당 마당씻이 마당씻이는 덧뵈기 놀이의 들어가는 마당으로 놀이판을 널찍하게 마련하고, 주위에 몰려든 손님들과 덕담을 나누며 공연의 흥을 돋군다. 둘째마당 옴탈잡이 마당씻이에서의 덩덕궁이 가락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꺽쇠가 어깨춤을 추며 다시 놀이판 중간으로 나타나 옴중을 놀려대며 대들고 마침내 쫓아내고 만다. 모두가 힘을 합쳐 옴으로 상징되는 외세를 물리치자는 당시 민중들의 뚜렷한 대외의식을 담고 있다. 셋째마당 샌님잡이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온갖 위엄을 떠는 샌님과 그 부인인 노친네가 등장하여 말뚝이와 서로 재담을 주고받는데, 노부부는 자신들의 하인인 말뚝이에게 일방적으로 놀림만 당한다. 말뚝이 특유의 능청스럽고 익살맞은 재담은 근엄하기만 했던 양반들의 허세와 부조리를 시원하게 꼬집고 있어 남사당패 그들만의 재치를 엿보게 한다. 넷째마당 먹중/취발이 잡이 샌님잡이 마당이 끝나 갈 무렵 두명의 피조리가 한쪽에 등장하여 피조리춤을 춘다. 먹중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등장하여 피조리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덧뵈기 놀이의 마지막 마당인 먹중/취발이 잡이 마당이 시작된다. 먹중이 놀이판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타령 장단으로, 취발이가 먹중에게 춤 솜씨를 자랑하는 장면에서는 덩덕궁이 장단과 굿거리 장단으로 넘어가며 놀이판의 흥을 돋군다. 먹중이 피조리와 놀아나자 취발이가 먹중을 멀리 쫓아버린다는 내용으로, 문란해져 있던 당시의 성(性)문화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덜미(꼭두각시놀음)
남사당놀이의 마지막 순서로 유일한 민속인형극인 덜미는 ‘목덜미를 쥐고’, ‘몽둥이를 쥐고’ 놀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사방을 포장으로 가리고 전면이 무대가 되는 공간을 통해 인형을 놀리며, 주조종자인 ‘대잡이’가 중심이 되고, 양 옆에 ‘대잡이보’가 앉아 등퇴장을 돕는다. 포장 밖 무대면을 향하여 비스듬한 앞자리에 대잡이와 재담을 주고 받는 소리꾼인 산받이가 앉고 그 옆에 꽹과리, 징, 북, 장고, 날라리 등의 잽이(악사)가 앉아 놀이를 진행시킨다. 꼭두각시놀음의 지배층의 지배구조와 그 횡포에 대한 저항, 파계승에 대한 풍자를 통한 외래종교에 대한 비판, 서민들의 우직한 관념 등이 희화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남사당패의 구성
남사당패는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정점으로 한 일정한 거처가 없는 남자들만의 집단이다. 꼭두쇠를 비롯하여 공연을 기획하는 화주, 놀이를 관장하는 뜬쇠, 연희자인 가열, 새내기인 삐리, 나이 든 저승패와 등짐꾼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0~50명이 한 패를 이루었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대내외적 책임을 지는 우두머리로 한 사람이었으나 그를 보좌하는 곰벵이쇠는 규모에 따라 두 사람일 경우도 있었다. 곰벵이는 남사당패의 은어로 허가라는 뜻인데, 어느 마을에 갔을 때 그 마을에서 놀이판을 벌여도 좋다는 허가를 맞는 사람을 뜻한다. 각 놀이의 중심 연희자가 되는 뜬쇠는 남사당놀이의 각 연희 분야의 선임자로 14명 내외가 있는데, 풍물의 총수로 상괴가 되는 상공운님, 징수 중의 우두머리인 징수님, 장고잽이 중의 우두머리인 고장수님, 북수 중의 우두머리 북수님, 날라리와 땡각잡이 우두머리인 회적수님, 버꾸잽이 중의 우두머리 버꾸님, 무동 중의 우두머리 상무동님, 선소리꾼 중의 앞소리꾼인 회덕님, 대접돌리기를 하는 버나잽이의 우두머리 버나쇠, 요술장의 우두머리 얼른쇠, 땅재주꾼의 우두머리 살판쇠, 줄꾼 중의 우두머리 어름산이, 덧뵈기 탈꾼의 우두머리 덧뵈기쇠, 덜미 조종자의 우두머리 덜미쇠 등이 있다. 뜬쇠의 밑에는 각기 연희자인 가열이 있고 그 밑에 삐리가 있다. 삐리는 초입자로 뜬쇠들의 합의와 판별에 의하여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연희에 배치되어 잔심부름부터 시작해 한 가지씩의 기예를 익혀 가열이 된다. 삐리들은 가열이 되기 전까지 여장(女裝)을 하였는데, 남색조직인 남사당패는 숫동모와 암동모로 짜여졌다. 숫동모는 가열 이상이었으며, 암동모는 삐리들이 감당하였다. 한편 부족한 인원의 보충은 가난한 농가의 아이들이나 고아, 가출아 등으로 이루어졌다.
전승자 정보
남사당놀이의 주요 계승자는 꼭두쇠 남형우(예명 운룡)를 중심으로 양도일, 송창선, 송순갑 등과 남형우의 부인인 박계순, 아들 남기환 그리고 박용태 등이 있다. 남형우(1907~1978) 꼭두쇠 남형우는 경기도 이천에서 출신으로 안성 복만이패, 이운선 행중 등 1900년대 초 이름을 떨치던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며, 꼭두각시놀음을 배웠다. 1934년부터는 마지막 남사당패인 안성놀이패를 조직하여 팔도를 유랑하며 기예를 펼쳤고 꼭두각시놀음 뿐만 아니라, 상쇠, 대잡이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덧뵈기에 훌륭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4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꼭두각시놀음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남사당의 여섯 놀음을 오늘에 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제자로는 그의 처였던 박계순과 아들인 남기환, 남기문 그리고 박용태 등이 있다.
연계정보
· 재구성 <한국의 민속극>, 심우성, 창작과 비평, 1975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관련도서
<남사당패연구>, 심우성, 동문선, 1974 <한국의 민속극>, 심우성, 창작과 비평, 1975 <남사당놀이>, 심우성·송봉화 사진, 화산문화, 2000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사이트
200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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