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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대제(釋奠大祭)

작품/자료명
석전대제(釋奠大祭)
지정여부
권오흥(집례)
구분
유교의례
흐름
석전대제는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한 훌륭한 스승에게 드리는 제례의식을 말하는데, 여기서 문묘란 공자의 사당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신라시대에는 국학, 고려시대에는 국자감,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안에 세워졌고 후에 옛 스승을 섬기는 뜻에서 병설하게 되었다. 석전대제는 석전제, 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라고도 하며, 석전이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는 것에서 나온 이름이다. 본래는 산천(山川), 묘사(廟祀), 선성(先聖:공자, 739년에 문선왕으로 추존됨) 등 여러 제향에서 이 말이 사용되었으나, 다른 제사는 모두 사라지고 오직 문묘의 석전만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문묘제향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석전대제는 전통적인 제례의식과 절차,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적 성격의 제향의식으로 성균관의 대성전(大成殿)에서 공자를 중심으로 그 제자들과 한국의 유학자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 등 명현 16위의 위패를 모셔놓고, 매년 2월과 8월의 첫번째 정일(上丁日)에 거행하며 지방에서는 향교에서 주관한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면서 점차 공자를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받드는 것이 관례화되었다. 명(明)나라 때에는 태학의 문묘를 대성전(大聖殿)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되었다. 우리나라에 태학이 최초로 설립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의 일인데,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신라에서는 진덕여왕 2년 (648)에 김춘추가 당나라에 건너가 국학을 찾아 석전의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신문왕 2년(648)에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성덕왕 16년(717)에는 태감(太監) 김수충(金守忠)이 당나라로부터 공자와 그의 제자 가운데 학덕이 뛰어난 10명의 철인(哲人) 및 72제자의 영정(影幀)을 가져와서 국학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석전의식이 국학에서 봉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국자감에서 석전례를 거행하였고 성종 3년(983)에 박사 임성로가 송나라로부터 공자묘도(孔子廟圖) 1폭과 제기도(祭器圖) 1권, <72현찬기(賢贊記)> 1권을 각각 가져와 성종에게 올렸다고 전하고 있으며 현종 11년(1019) 8월에는 최치원을 선성묘에 종향하고 현종 13년(1021)에 설총을 또한 이 묘에 종향하였다고 한다. 예종 9년(1113) 6월에는 사신 안직승이 귀국할 때 송나라 휘종이 신악기와 악보 및 지결도를 보내주어 이 때 들어온 대성아악이 원구(圓丘), 사직(社稷), 태묘(太廟), 선농(先農), 선잠(先蠶), 문선왕묘 등의 제사와 그 밖의 연향에 쓰이게 되었다. 현재 성균관의 위치와 규모로 문묘가 설립된 것은 조선시대 때이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태학 설립을 명하고 다음 해 가을 7월에 문묘를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문묘의 최초 모습이다. 태조 7년(1398)에는 숭교방(崇敎坊)에 성균관을 설치하여 국립 대학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하였고 정전인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4성(聖), 10철(哲)과 송조 6현 등 21위를 봉안하였다. 또 동서무(東西廡)에는 우리나라 명현 18위와 중국 유현 94위 등 모두 112위를 봉안하여 매년 춘추에 두 차례 석전을 받들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37년부터는 양력 4월 15일과 10월 15일로 변경하여 실시하다가 1949년에 전국유림대회의 결의로 5성위(五聖位)와 송조2현(宋朝二賢)만 봉안하고 그 외 중국 유현 108위는 매안(埋安, 신주를 그의 무덤 앞에 묻는 것을 말함)하였다. 또 우리나라 18현을 대성전에 올려 받들어 모셨으며 춘추석전을 없애고 탄일(誕日)인 8월 27일에 기념석전을 행하였다. 그러나 3년 뒤인 1953년에 공문10철(孔門十哲)과 송조4현을 복위하고 석전도 봄과 가을 두 차례 즉,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로 환원하여 오늘까지 봉행하고 있다.
내용
우리나라와 중국은 석전에서 모시는 성현이 달랐고, 시대의 정황에 따라서도 달라지곤 하였다. 고려와 조선 사이에 배향 인물의 변화가 심하게 나타났는데, 이것은 고려 말에 시작된 성리학의 전파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의 건국을 주도하였던 유신들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성리학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자연히 문묘 배향인물에 대한 판단 역시 성리학적 잣대가 주로 사용되어 도덕성의 측면이 한층 강조되는 경향과 함께 우리나라의 민족적 자부심이 결부되어 결정 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는 성균관에도 수난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성균관이 교육기능을 상실함으로써 석전의 의미를 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문묘에 배향된 성현은 해방 이후에 성균관을 재정비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는 시기에 심산 김창숙선생에 의해 주도되어 결정되었다. 석전대제의 진행절차는 홀기를 제작하여 진행되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규격을 그 원형으로 하고 있다.
전일(前日)
석전 봉행의 예비연습이라고 할 수 있는 습의(習儀)전에 대성전에 고한 뒤 명륜당에서 재계(齋戒)를 한다. 제관은 반드시 산재(散齋) 2일, 치재(致齋) 1일의 재계를 하는데 산재는 외적인 면을 삼가는 것으로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외사(外舍)에서 잠을 자며 술과 마늘을 먹지 않고 문병과 조상을 하지 않는다. 또 음악도 듣지 않으며 형벌과 관련된 사무를 관장하지 않고 거칠고 사나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산재의 금기사항이다. 치재는 내적으로 정재하는 것을 뜻하는데,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오로지 제사드릴 신만을 생각하고 근신하고 삼가며 행례(行禮)에 임한다. 향과 축문을 전하는 의식인 전향축의(傳香祝儀)를 하고 습의와 진설을 하는데, 습의는 전일 오후 1시부터 성균관과 전국 향교에서 동시에 행하며 제수의 진설은 습의를 마친 뒤 당일 오후 5시에 거행한다. (석전 당일 아침 일찍 하기도 한다.)
석전일(釋奠日)
석전의 봉행절차는 다음과 같다. 가. 전폐례(奠幣禮) : 초헌관이 신위전에 3상향하고 폐백을 올리는 의식 나. 초헌례(初獻禮) : 초헌관이 신위전에 첫 술잔을 올리고 대축(大祝)이 축문을 읽는 의식 다. 아헌례(亞獻禮) : 아헌관이 신위전에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라. 종헌례(終獻禮) : 종헌관이 신위전에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마. 음복수조례(飮福受胙禮) : 초헌관이 음복위에서 음복잔을 마시고 수조하는 의식 바. 철변두(撤籩豆) : 대축(大祝)이 변(籩, 제사 지낼 때 신위(神位)의 좌편에 마른 음식이나 과일 등을 담아 놓은 대나무로 만든 제기)과 두(豆, 제사 지낼 때 신위의 오른편에 고기, 젓, 국 등과 같이 젖은 음식을 담아 놓는 나무로 만든 제기)를 거두는 의식 사. 망요례(望燎禮) : 초헌관이 망요위에서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것은 보는 의식
석전의 제수와 복식
향교와 성균관의 석전에 쓰이는 제수는 성균관 석전의 제수의 종류가 좀 더 많으며, 대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성균관에서 진설하는 제수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가. 오성위(五聖位) ① 변에 담는 제수 12가지 - 율황 : 말려서 겉껍질과 속껍질을 벗긴 밤 - 건조 : 마른 대추 - 진자 : 개암(잣) - 능인 : 마름(은행) - 검인 : 호도 - 녹포 : 사슴고기 포(쇠고기 포) - 어숙 : 말린 물고기(대구포) - 형염 : 원래는 소금을 뭉쳐서 호랑이 형태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마른 소금을 그대로 사용한다. - 백병 : 흰떡 - 흑병 : 검은떡 - 구이 : 기주떡 - 분자 : 인절미 ② 두에 담는 제수 12가지 - 구저 : 부추김치 - 순저 : 죽순김치(도라지) - 청저 : 무 김치 - 근저 : 미나리 김치 - 녹해 : 소고기젓(본래는 사슴고기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소고기를 씀) - 어해 : 물고기 젓(조기젓) - 토해 : 토끼고기 젓(토끼 고기를 저며서 소금에 절여 사용) - 탐해 : 소고기 장조림 - 비석 : 천엽 - 돈박 : 돼지 겨드랑이 부분 고기 - 이식 : 경단 - 삼식 : 부꾸미 ③ 보(簠, 쌀과 기장을 담는 제기로 수수와 피쌀을 넣는 궤와 한 벌이다. 동으로 만들며 밖은 네모이고 안은 둥글다.) : 기장과 쌀을 놓음 ④ 궤(簋, 수수와 피쌀을 놓는 제기로 동으로 만들며 밖과 안이 모두 둥글다) : 수수(黍)와 피쌀(稷)을 놓음 ⑤ 3성(3腥) - 시성7체(豕腥七體) : 돼지고기 7부위(양 어깨, 양 갈비, 양 뒷다리, 척추) - 양성7체(羊腥七體) : 양고기 7부위(상동) - 우성(牛腥) : 소고기 ⑥ 3 대갱(고기국물 3그릇)과 3화갱(대갱에 오미를 가한 국 3 그릇) ⑦ 주(酒) : 예제(醴齊) 앙제(盎齊), 청주(淸酒) ⑧ 익은 고기 : 소의 내장 익힌 것, 양의 내장 익힌 것, 돼지껍질 익힌 것 ⑨ 폐백 : 흰 모시 나. 종향위(從享位) ① 녹포(육포와 율황(밤) ② 소고기 젓, 무 김치 ③ 쌀 ④ 수수 ⑤ 시성(돼지고기) ⑥ 청주
석전의 복식과 제관
- 복식 석전대제를 지낼 때에는 초헌관에서 찬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관들이 금관제복을 입는다. 그러나 금관은 제관의 등급에 조금씩 다른데, 관의 품계에 따라 양(梁, 굴건(屈巾)이나 금량관(金梁冠) 등의 앞이마에서부터 우뚝 솟아올라서 둥긋하게 마루가 져 뒤쪽까지 닿은 부분을 말함)의 수를 다르게 한다. 양의 수는 천자국의 기준에 의거하여 1품관은 7량, 2품관은 6량, 3품관은 5량, 4품관은 4량, 5품관은 3량, 6품관~7품관은 2량, 8품관 이하는 1량으로 정하며, 모두 뿔로 비녀를 만든다. 그 외 참석자들은 유건과 도포를 착용하였다. 유건은 조선시대부터 생원과 학생, 선비 등이 착용하던 것으로서 전체적인 모습이 '民'자를 닮았다고 하여 '민자건(民字巾)'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전통 관례 가운데 삼가례(三加禮) 때에 착용하였으며 이는 성인만이 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포는 도복(道服)이라고도 하며 의식이 있을 때는 물론, 평상시의 의복으로서도 착용하였다. - 석전봉행 헌관 및 집사의 역할 초헌관 : 5성위에 향을 사르고 첫 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제사의 주인이다. 아헌관 : 5성위에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을 말한다. 종헌관 : 5성위에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을 말한다. 분헌관 : 종향위에 잔을 올리는 제관을 말한다. 당상집례 : 한문 홀기를 읽어 진행을 담당하는 제관을 말한다. 당하집례 : 원래는 동서무 진행을 담당하는 집례였으나 현재는 동서무에 위패를 모시지 않아 대성전 월대 밑에 서서 해설을 담당하는 제관을 말한다. 전사관 : 제수를 준비하고 진설을 담당하는 제관을 말한다. 대축 : 축문을 읽는 제관을 말한다. 알자 : 헌관을 안내하는 제관를 말한다. 찬인 : 집례 대축 제집사를 인도하는 제관를 말한다. 봉향 : 향을 받드는 집사를 말한다. 봉로 : 향로를 받드는 집사를 말한다. 봉작 : 준소(술항아리를 두는 곳)에서 사준이 따른 술잔을 받아 헌관에게 건네주는 집사를 말한다. 사준 : 준소에게 술을 잔에 따르는 집사를 말한다. 전작 : 헌관에게 술잔을 받아 신위 앞에 올리는 집사를 말한다.
전승자 정보
석전대제는 성균관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성균관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석전대제보존회의 회장은 성균관장이 맡고 있다. 석전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단체종목으로 의례가 행해지고 의례절차에 따라 음악과 무용이 곁들여지므로 보유자는 의례, 음악, 무용 등을 실연하는 삼백여 명을 통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초대 기예능보유자인 강정희의 뒤를 이어 권오흥이 활동하고 있다. · 권오흥(權五興, 1936~ ) 충남 부여 출신으로 유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천자문과 소학을 배웠다. 15년간 직장생활을 하였으나 유학공부에 대한 욕구로 1978년 성균관에서 유학을 배우기 시작한 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서 사서오경, 제자백가, 대전회통 등의 2년 과정을 마쳤다. 그 후 성균관 청년유도회 부회장의 자격으로 석전의례 실무를 맡게 된 후 전례연구위원, 총무처장, 전례위원장대행, 유교교육원 교수, 성전의례 강사 등을 역임하면서 석전전승의 경력을 쌓았다. 1996년에 초대 보유자 강정희의 뒤를 이어 보유자 인정을 받았으며, 그동안 석전대제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자 꾸준히 노력하였다.
연계정보
· 재구성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17 : 석전대제>,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 1998 <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제238호 석전대제>, 성경린·유승국,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5집 : 237-254, 문화재관리국 편저
관련도서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17 : 석전대제>,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 1998 <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제238호 석전대제>, 성경린·유승국,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5집 : 237-254, 문화재관리국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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