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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띠뱃놀이

작품/자료명
위도띠뱃놀이
지정여부
김상원
구분
무속의례
흐름
위도띠뱃놀이는 전라남도 전북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서 열리는 마을 풍어제로 매년 정월 초 사흗날 어민들이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제의로 지내는 의례이다. 마을 당제봉(마을 산 봉우리) 정상에서 지내는 원당제에서부터 마을의 바닷가에서 지내는 용왕제에 이어 띠배 보내기까지 연결되는 독특한 제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위도 띠뱃놀이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없으며,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고기잡이로 생업을 삼았던 먼 조상 때부터 있어왔던 풍어기원제(豊漁祈願祭)의 하나라고 한다. 예전 위도 앞 바다는 조기잡이의 칠산어장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한때는 큰 굿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조기잡이의 쇠퇴와 함께 큰 굿이 없어지고 당제 역시 위축된 적이 있었으나 배를 타고 나타나는 도둑들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도곤’이라는 이장이 나서서 주민들을 단합시키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줄다리기를 포함하여 행사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대리마을 당제의 한 과정인 ‘띠배보내기’가 출전하여 대통령을 수상하였고, 1985년에 위도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그러나 띠배보내기 행사는 대리마을 당제의 전체 과정 중 용왕굿의 마지막 과정에 해당하는 의례이다. 1984년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이 의례를 <위도의 민속-대리원당제> 라고 표현하였다. 이 행사 자체가 단순한 놀이행사가 아니라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풍어기원의례의 하나임을 생각해 볼 때 위도띠뱃놀이라는 명칭은 적절하지 않으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의 공식적인 명칭이 ‘위도띠뱃놀이” 이므로 이를 따르도록 한다.
내용
위도띠뱃놀이는 산에서 지내는 당굿과 바닷가에서 지내는 용왕굿이 주를 이루는 풍어제이다. 당굿은 배마다 가지고 있는 오색의 뱃기에 일년동안 모시게 될 뱃신(뱃神)을 내림 받아 풍어를 기원해주는 선주중심, 남성중심의 제의이며, 용왕굿은 마을의 액을 없애고 바다의 원혼을 달래며 풍어를 기원하는 여성중심의 제의이다. 이 두개의 제의를 시공간적(時空間的)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용왕밥 던지기’ 행사와 ‘주산(主山)돌기’ 이다. 주산돌기는 사실상 풍물과장에 해당한다. 이 과장은 해안 마을에서 올리는 보통의 대동굿과 형태의 기본이나 진행 절차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인데, 대동굿에서는 각 가정을 돌며 가정굿을 해주는데 비해 대리마을의 원당제는 마을 요소요소의 처소신(處所神)을 위해 주는 내용으로 풍물과장이 되는 것이다. 원당제에 이어 바닷가에서 지내는 용왕굿은 모든 주민이 빠짐없이 참여하여 술과 노래를 함께하는 가무과장을 이루고, 마지막에 바다로 띄워 보내는 띠배보내기가 이 굿의 절정을 이루면서 가장 뛰어난 축제과장이 된다.
원당제(願堂祭)
대리마을 제당(祭堂)의 이름은 원당(願堂)인데 마을 왼쪽에 위치한 당젯봉 정상에 있다. 원당이라는 이름은 어민들이 모든 소원을 빌고 또 그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원당은 영험함에 대해서는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고 현재까지도 원당에 대한 믿음은 지속되고 있다. 당신은 모두 12서낭이라고 하며 당집 안에 당신도에는 물애기씨, 옥지부인, 본당마누라, 원당마누라. 장군님, 애기씨, 신령님, 산신님, 문수영대신 2위가 모셔져 있다. 여기에 최초로 당집을 지었던 당주를 신으로 섬겨 11서낭이 되고 마지막 12번째 서낭의 명칭은 불분명하다. 원당의 여러 신들에 대한 내력이나 신격, 역할 등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또 어느 신이 주신(主神)인지도 분명치 않으나 당 명칭이 원당이고 또 여러 서낭 가운데 1년 동안 배에 모실 서낭을 내리는 깃굿 과정에서 선주들이 무녀로부터 뱃신을 받을 때 제일 많이 내림 받기를 원하는 서낭이 원당마누라, 본당마누라, 장군서낭, 애기씨 순서인 것으로 볼 때 원당마누라가 가장 중요한 신일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당제의 준비는 섣달 10일부터 시작된다. 마을에서는 원당제에 대한 협의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 총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모아 제의의 규모와 경비 등을 논의한다. 제의 규모와 경비가 결정되면 제관을 선정하는데 제관은 제만(화주) 1명과 원화장 1명, 부화장 2명을 선택한다. 제만은 그 해 제사를 모실 총책임자로 제주가 되고 원화장은 부책임자로 제사에 쓰일 음식 장만을 담당한다. 부화장은 원화장을 도와 음식을 장만하고 여러 가지 잔심부름을 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모든 의례가 끝날 때까지 부정한 것을 피하여 금기에 들어간다. 제사 비용은 대체로 선주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부담하는데 선주와 주민들에게 차등적으로 부과된다. 제물은 화주가 제사일로부터 5일 전쯤 줄포면으로 제물을 구입하러 간다. 제물의 구입은 깨끗한 상점을 골라 궂은 일이 없는지를 묻고 가능한 한 가게에서 많이 구입한다. 이 때 물건값은 깎지 않으며 주인이 부르는 대로 지불한다. 구입한 제물을 옮길 때에도 다른 물건을 일체 접근시키지 않고 운반한다. 물건이 제만(화주)의 집에 운반되면 제만의 집에 금줄이 쳐지고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 제물이 오는 날 마을의 선주 집에서는 오색의 뱃기를 집안에 달고 술을 마시며 즐긴다. 제물 구입을 한 이튿날 제사에 사용할 술을 만들고, 섣달 그믐날에는 띠배밥, 도제밥, 허드레밥 등의 쌀과 원당제와 도제 등에 쓰일 떡살 및 술과 삼색과일 등을 분배하고 떡살을 담근다. 정월 초 이튿날에는 원화장과 부화장이 제수로 맞추어 놓은 돼지를 제만집으로 운반해 와서 오후 늦게 돼지를 잡는다. 이것이 완료되면 풍물을 울려 온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제사 당일인 정월 초사흘에 새벽 일찍 지은 메를 비롯하여 기타 제물과 제기, 양초 등 제를 올리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갖추어 맨 앞에 제만이 서고 다음이 무녀, 독축관, 영기(令旗), 원화장(제물을 지게에 지고 간다.), 풍물패(풍물패는 태평소1 꽹과리 3, 징 2, 장고 2, 북 1, 영기 2로 구성된다), 뱃기를 든 선주들, 다시 영기, 동민의 순서로 행렬을 이루어 원당에 올라간다. 원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마을 입구의 당나무에 작은 제상을 차리고 잠시 당산굿을 하며, 당 오르기 전 작은당에서도 제사를 지낸다. 제당에 도착하여 준비한 제물을 진설한 뒤 무녀에 의해 당굿이 시작된다. 당굿은 무녀 1명이 장고와 징 장단에 맞춰 성주굿부터 시작하는데 무복은 입지 않고 깨끗한 치마 저고리의 평상복으로 한다. 굿의 순서는 ① 성주굿 ② 산신굿 ③ 손님굿 ④ 지신굿 ⑤ 서낭굿 1(원당, 본당서낭) ⑥ 서낭굿 2(애기씨 서낭) ⑦ 서낭굿 3(장군 서낭) ⑧ 깃굿 ⑨ 문지기굿으로 이루어진다. 성주굿은 성주님이 터를 잡고 안동 제비원에서 솔씨를 받아 심고 나무를 길러서 집을 짓는 내용인데, 마을 사람들의 명과 복 특히 풍어를 빌고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굿이다. 산신굿은 산신을 위하면서 마을의 평안과 복을 기원하는 굿이며, 손님굿은 마마신(손님, 천연두신)을 맞아 손님을 위해주고 명과 복을 기원하는 굿이다. 지신굿은 지신밟기의 하나인데, 터주를 위하고 복을 기원하는 굿이다. 서낭굿 1, 2, 3은 각기 원당과 본당서낭, 애기씨 서낭, 장군 서낭에게 복을 기원하는 것인데, 원당서낭과 본당서낭에게는 마을 인사들을 축복해 주길 기원하는 것이고 애기씨 서낭에게는 어린 아이들의 수명장수와 복을, 장군서낭에게는 풍어를 기원한다. 깃굿은 각 어선의 선주들이 일년 동안 자기네 배에 모실 서낭님을 내림 받는 굿인데, 받기를 위하는 서낭님을 정하면 무녀가 선주의 손바닥에 산쌀을 몇 알 집어 주어 짝수가 되면 그 서낭을 내림 게 되고 홀수가 되면 짝수가 될 때까지 다른 서낭을 받는다. 서낭이 내려지면 그 서낭의 이름을 한지 쪽에 적어 주는데 이것을 깃손이라 하며 이 깃손을 뱃기의 꼭대기에 묶는다. 이것을 깃손받기라고 한다. 깃굿은 선주에 대한 축원과 풍어를 기원하고 어선의 뱃기에 깃손을 내리는 굿으로 일명 선주굿이라고도 한다. 문지기굿은 원당굿의 마지막 절차로 여러 원귀들을 달래고 보내는 굿이다.
용왕밥과 주산 돌기
당굿이 모두 끝나면 제물을 챙겨 원당에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제만(화주), 원화장, 무녀, 독축관, 풍물패, 뱃기 순서로 내려온다. 중간 당에서 한바탕 풍물을 울리고 춤을 추며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데 이 때 제관은 한지에 싼 밤, 곶감, 대추를 묻고 내려온다. 마을 입구의 당나무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내려오면 거기서도 흥을 돋구는 풍물을 울린다. 이 때도 한지에 싼 제물을 묻고 마을의 동쪽 바닷가에 있는 용왕바위에 가서 제관은 한지에 싼 용왕밥을 바다 아래로 던지고 바다 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용왕밥을 던지고 난 뒤 주산돌기를 하는데 주산돌기는 제관과 풍물패의 뱃기 행렬이 뒤의 산 언덕 쪽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마을의 평안을 비는 의식이다. 마을 뒤로 한바퀴 돌면서 중간에 위치한 작은 당(당나무)에서 역시 한지에 싼 제물을 묻고 잠시동안 둥글게 모여 더욱 흥겹게 풍물을 치고 난 뒤 행렬은 마을을 돌아서 마지막으로 마을 서쪽의 바닷가 용왕바위에 가서 다시 용왕밥을 던지고 마을 앞 바닷가로 모이면 주산돌기가 모두 끝나게 된다.
용왕굿과 띠배 보내기
원당굿과 주산돌기를 하는 동안 마을 앞 바닷가에서는 띠배를 만들어 놓고 있다가 용왕제를 시작한다. 띠내는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길이 3미터, 폭 2미터 정도의 배형태로 만들고 띠배 안에는 과일, 떡, 밥, 고기 등을 넣어 놓고 허수아비도 앞 머리에 1개, 띠배 양쪽에 3개씩 모두 7개를 만들어 세운다. 또 띠배에는 가마니로 만든 돗대를 세우고 닻을 만들어 배 형식을 제대로 갖춘다. 띠배에는 작음 판자 쪽에 “소속 : 대리 띠배 유자망, 낭자망 대풍어 용왕님 귀하”라고 써 붙인다. 용왕굿이 시작되기 전부터 마을 앞은 마을 사람들로 가득 차며 마을의 부녀자들이 고깔을 쓰고 장구, 징, 소고 등을 들고 나와 풍물패를 이루어 흥겹게 논다. 용왕굿은 띠배 옆에 제상(용왕상)을 차리고 바다 쪽을 향해 굿을 하며 장구와 징이 반주를 한다. 용왕굿을 하는 동안 한 쪽 옆에서는 가래질 노래, 술배노래 등을 부르고 또 한쪽에서는 떠들고 웃거나 하면서 큰 놀이마당이 된다. 용왕굿이 끝나면 제물들을 함지박에 담아서 섞어 만든 허드레밥을 바다에 고수레(들놀이, 산놀이, 뱃놀이 갔을 때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먹기 전에 자리 밖으로 “고수레” 하고 음식을 던지는 일) 하고 고수레가 끝나면 드디어 띠배를 바다에 내리고 어선에 끈으로 연결하여 바다 가운데로 끌고 나간다. 띠배를 끌고 나가는 어선을 모선(母船)이라고 하는데 이 모선에 풍물패가 타고 술배노래를 부를 몇 사람도 함께 탄다. 띠배가 바다로 나갈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바닷가에 서서 바라보며 그 중에는 합장하기도 하고 절을 하기도 한다. 모선 좌우로는 4~5척 정도의 호위선(護衛船)이 오색의 뱃기를 휘날리며 바다 가운데로 가서 띠배를 떼어 놓으면 띠배는 마을의 모든 액을 싣고 멀리 떠내려 간다. 모선과 호위선이 돌아오면 띠뱃놀이의 모든 행사가 끝이 난다. 대리마을 원당굿에서 무녀가 사용하는 무구는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 대칼이 유일하며 이 칼의 길이는 22 내지 23 센티쯤 되고 손잡이 끝에 백지술을 길게 달앗다. 이 대칼은 2개로 양손에 하나씩 들고 굿을 한다. 그러나 무복을 입지 않을 때는 이 칼도 사용하지 않는다. 원당굿에서는 장구와 징만을 악기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전문적인 악사의 것이라기 보다는 마을 풍물패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며 마을에서 장구와 징을 오랫동안 잡아온 사람이 악사가 되어 무굿에서 반주를 맡는다. (하지만 조기잡이가 한창이던 시절에 올리던 풍어제에서는 전문악사들이 삼현육각을 연주했다고 한다)
전승자 정보
위도띠뱃놀이는 현재 보존회와 장구 부문 예능보유자인 김상원씨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 무굿은 본래 조금례 무녀가 이끌어왔지만 그녀가 1995년에 사망한 뒤 무가 출신이 아닌 일반 전수자 안길녀씨가 조금례 생전에 약간이 학습을 받아 그 뒤를 이어 굿을 이끌었으나 그녀 역시 1999년에 사망하였다. ·조금례(趙金禮, 1917~1995) 조금례는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무굿을 전수받았고, 출가 역시 세습무가로 간 전형적인 세습무였다. 조기잡이의 칠산 어장으로 유명하던 위도에서 5일씩 큰 풍어굿을 할 때부터 참여해 온 지역의 마지막 큰 무당이었다. 조금례는 본래 위도 대리마을 원당굿 뿐 만 아니라 진리, 식도리 등 각 마을의 큰 굿을 모두 주관하였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대리마을 원당굿과 면소재지이자 자신의 거주지인 진리 당굿에서 참여해 왔다.
연계정보
· 재구성 <무형문화재지정보고서 제162호 풍어제_위도띠뱃놀이>, 장주근·하효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8집(162~167호), 문화재관리국 <한국의 풍어제>, 하효길, 대원사, 1998
관련도서
<무형문화재지정보고서 제162호 풍어제_위도띠뱃놀이>, 장주근·하효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8집(162~167호), 문화재관리국 <한국의 풍어제>, 하효길, 대원사, 1998 <위도의 민속>, 하효길/정종수 외, 국립민속박물관, 1984 <한국의 굿과 무당>, 황루시, 문음사, 1992 <위도 띠배굿>, 임석재, 열화당, 1993 <부안의 문화유산>, 부안문화원, 1999 <한국예술사전(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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