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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가(山有花歌)

작품/자료명
산유화가(山有花歌)
전승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지정여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호
구분
민속악
개요
<산유화가(山有花歌)>는 충청도 일부지방에 전승되는 민요의 하나로, 농부들이 김을 매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른 노동요이다.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 있다.
내용
우리 나라 민요 가운데 <산유화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은 충청도와 경상도 지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그 가사 내용의 대부분이 백제 고도(古都) 부여의 지명이나 백제 고사(故事)와 연결되어 있어 백제가요가 민간에 구전되면서 취향에 따라 그 가사 내용이 변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여 지방의 <산유화가>는 촌로들의 구전에 의하여 토막토막 이어져왔는데 ‘궁야평’, ‘구룡포’, ‘남당산’, ‘사비강’, ‘취령봉’, ‘반월성’ 등 모두가 부여지방에서 쓰이는 지명(地名)들이다. 이 <산유화가>는 나라를 잃은 슬픔과 함께 백제 유민들의 비감한 창곡에 원망하는 가사를 달아서 “용머리를 생각하여 구룡포에 버렸으니 슬프고나 슬프고나 어하 벗님 고국충정 못다허네”라고 잃은 나라를 그리워하는 향수가 깃들여 있다. 이러한 노래는 남녀가 화답하는 형식으로 불려졌고 모심기, 김매기 등의 농요로서뿐만 아니라 봄, 가을의 놀이에서도 노동과는 관계없이 불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산유화가>의 어원에 대해 국문학적 의견은 학자마다 다르다. 첫째, <산유화가>는 ‘메나리’라는 설이다. 즉 ‘山’은 뫼이고 ‘나리’는 ‘遊’로 ‘뫼놀이’가 변하여 ‘메나리’로 또 ‘산유화’로 불려졌다는 설이다. 둘째는 ‘구시대의 노래’라는 설로 즉 ‘메’는 메나리의 앞에 쓰여 ‘멀다’로 ‘옛’의 뜻이며 ‘나리’는 ‘향유’의 뜻이 있다는 설, 그리고 셋째는 ‘산백합’의 이름으로 단순한 식물명이라는 설이다. 또 옛 민요 ‘미나리꽃은 한철이라’하는 데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명칭으로는 뫼놀꽃, 미나리 등이 있다. 이 민요는 노인들에 의해서 토막토막 구전되어왔다. <산유화가>는 농민들의 생활감정을 두루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노랫말에 백제 패망의 비애를 절실히 담고 있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며, 이 고장의 향토성과 역사성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세련된 가사로 백마강의 승경을 멋스럽게 노래하고 있으면서 백제 역사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회고적으로 읊고 있는 이 민요는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있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입상한 바 있다. ①긴모심기소리 좁은 의미의 <산유화가>로 불려지는 <긴모심기소리>는 중모리장단에 가까운데, 뒷소리가 따르는 장절형식으로 되어 있다.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네 장단 메기면 농군들이 두 장단에 “헤헤헤 아하 헤헤 헤헤헤헤여로 상사듸요”하고 받는다. 선율은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으나 전라도 상사소리와 약간 다른 향토적인 가락으로 되어 있다. (가사) 뒷소리(후렴) : 헤헤헤 아하 헤헤 헤헤헤헤 여로 상사듸요 - 헤헤헤 아하 헤헤 헤헤헤헤 여로 상사듸요 - 산유화야 산유화야 궁야평 너룬 들에 논도 많고 밭도 많다 씨 뿌리고 모 옮겨 충실허니 가꾸어서 성실허게 맺어 보세 - 산유화야 산유화야 입포에 남당산은 어이 그리 유정턴고 매년 팔월 십륙일은 왼 아낙네 다 모인다 무슨 모의가 있다던고 - 산유화야 산유화야 사비강 맑은 물으 고기 낚는 어옹등아 웬갖 고기 다 잡어도 경치일랑 낚지 말으소 강산 풍경 좋을시고 - 산유화야 산유화야 이런 말이 웬말이냐 용머리를 생각허면 구룡포에 버렸으니 슬프구나 슬프구나 어하 벗님 구국 충성 못 다했네 ②자진모심기소리 모심기 끝판에 부르는 소리인데 중중모리장단으로 조금 빠르고 소리도 짧으며 뒷소리는 “어화어화 상사듸여”로 되었는데 막판에 빨리 몰아가면 매우 흥겹다. (가사) 뒷소리(후렴) : 어화 어화 상사듸요 - 어화 어화 상사듸요 - 산유화야 산유화야 네 꽃 피어 자랑마라 - 네 꽃 피어 자랑마라 구십 소광 잔꽌간다 - 구룡포 너룬 들에 모중 소리 한창이오 - 한산의 베틀가는 어깨춤이 절로 난다 - 농사일이 바쁘건만 부모형제 구제헌다 ③김매기소리 <덩어리소리>라 하여 먼저 느린 소리로 “에하 덩어리”하고 경토리에 가까운 화평스러운 가락으로 유장하게 메기고 받으며 김을 매다가 “어화덩이”하고 중중모리장단으로 몰아가며 흥겹게 부른다. 그리고 끝날 무렵에는 둥글게 싸며 “어화덩이”하고 자진모리장단으로 몰아가며 메기고 받는데 구성지고 씩씩하다. <긴김매기소리> (가사) 앞소리 뒷소리 어하 덩어리 헤하 덩어리 올 가찬 덩어리요 에하 덩어리 해는 지고 저문 날은 에하 덩어리 옥창 앵두가 다 붉었구나 에하 덩어리 동방이 밝아온다 에하 덩어리 소치는 아이들아 에하 덩어리 <잦은김매기소리> (가사) 앞소리 뒷소리 에화 덩이 어화 덩이 어화 덩이 어화 덩이 얼가차 덩어리 어화 덩이 동고리 맴돌로 어화 덩이 잘도 맨다 어화 덩이 어서 매고 어화 덩이 집으로 가자 어화 덩이 어화 덩이 어화 덩이 어화 덩이 어화 덩이 우우 와아 ④벼타작소리 개상절로 타작하는 <벼타작소리>는 <바심소리>라 하며 세마치장단으로 “에야에헤”하고 뒷소리를 받으며 씩씩하게 부르는데 가락과 손발짓이 맞아 떨어진다. ⑤벼부치는 소리 <나비질소리>라 한다. ⑥벼쌓기소리
전승자 정보
<산유화가>는 198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는데 당시 박홍남(1920.11.17), 홍준기, 이병호 3人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 중 홍준기, 이병호가 노환으로 타계하고 보유자 후보였던 김영구(1946.8.23)와 조택구(1937.4.11)가 1996년 새롭게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박홍남은 26세 때부터 국악에 입문하였고 1970년부터 홍준기로부터 <산유화가>를 전수받았다. 김영구는 1975년 4월부터 20여 년간 박홍남에게 기능을 전수받아 1991년 6월 15일에 후보자로, 1996년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목청이 좋고 꾸준히 연마하는 인물이다. 1989년부터 산유화가보존회 사무국장을 역임하였고 1992과 1995년에는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조택구는 1974년부터 <산유화가>를 연마했으며 1989년 산유화가보존회의 부회장을 역임했다.
연계정보
· 관련도서 <대전충남 옛소리기행>, 하주성, KBS대전방송총국 <뿌리깊은나무 팔도소리 제2권>, 한국브리태니커 <산유화가 조사보고서>, 충청남도 <문화재도록>, 충청남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 관련사이트· 관련가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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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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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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