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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원조와 건설 호황의 시대

1945년 8월에 민족은 광복의 감격을 맞았다. 그러나 건축은 공백기를 맞는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정치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하여 조선인의 우매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중요 기술 전수를 회피하고 전문인 양성을 기피하는 방도를 고수하였다. 건축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사람들이 공업학교 토목ㆍ건축과를 졸업하였으나 말단에서 업을 닦는 정도가 고작이어서 광복을 맞아 새로운 건축이 요구되나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고급 전문가가 없었다. 속성으로 건축가를 배출하는 일이 시급하였다. 일본이나 미국, 구라파에서 수련한 분들이 귀국하여 교육을 감당하면서 우선 양식 건물 조영에 부응한다는 의도에서 그에 집중하였다. 과도기적인 발상이었다. 내 것 가르친 연후에 식견이 도저해지면 남의 것도 배워야 한다는 교육의 기본 방안을 준수하기엔 너무나 다급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건축과의 학도들은 한옥을 제쳐 두고 양옥만을 배우게 되었다. 새 정부가 탄생했지만 건축 경영은 쉽지 않았다. 이미 사용하던 건축물을 이용하는 선에서 만족하였고 부적절하다고 해도 쓰임에 따라 내부를 수리하는 정도로 충족하였다. 그러다가 한국 전쟁을 맞는다. 그러니 이 기간은 건축 활동에서도, 건축 사회 구성에서도 완전한 과도기였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건축은 조성되지 못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국무총리가 반도호텔에 관저를 차려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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