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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번역극의 역사 - 유럽연극

1916년 혁신단이 영국 작가 브랏든의 <디아볼라>를 번안한 작품 <정부원(貞婦怨)>을 단성사에서 초연한 후, 20세기 한국에서 번역극은 20여 개 서양 국가의 약 400여 명 작가의 880여 편의 작품들이 2920여 회에 걸쳐서 공연되었다. 물론 그동안 유실된 자료가 적지 않아 이 통계에는 다소간에 오차가 있을 수 있으나, 실로 엄청난 번역극 작품들이 한국에서 공연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동양 여러 나라의 극작품들은 거의 도외시되는 기현상을 보였고, 다만, 1976년 극단 성좌에서 공연한 일본 극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나생문>이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한국에 도입 수용된 서양 연극들은 한 편으로는 한국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사회적·정치적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현실적 요청에 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근대극의 극작술과 공연술에 직접·간접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글은 그 범위를 1995년까지로 한정하여, 우선 번역극의 공연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다음, 번역극의 수용 양상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기로 한다. 1. 한국 번역극의 역사 1.1. 유럽 연극 일제 강점 기간(1910~1945), 번역극의 공연은 두 가지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그 하나는 현실 비판과 민중 계몽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한국 신극 발전과 창작극의 육성을 위해 그 이상적 모델을 서구 리얼리즘 연극에서 찾고자 함이었다. 프랑스 연극은 몰리에르(Moli&egrave;re)의 희극 <수전노>가 당시 착취계급을 희화화한 작품으로 번안되어 공연되었고, 빌드락(Vildrac)의 <상선 테나시티>는 억압당하는 기층민의 절망을 그린 사실주의극으로 선호되었다. 독일의 표현주의 작품인 괴링(R. Goering)의 <해전>과 카이저(G. Kaiser)의 <우정>, 쉔헤어(K. Sch&ouml;nherr)의 <신앙과 고향>은 새로운 연극형태의 실험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러시아 연극은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각색한 <카추샤>가 인도주의적 민중극의 형태로 번안되어 공연되었고, 서구 리얼리즘 연극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체호프(Chekhov)의 <구혼>, <곰>, <벚꽃 동산>과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H. Ibsen)의 <인형의 집>이 여러 번 재공연되었다. 이탈리아 극작가 피란델로(l. Pirandello)의 <바보>도 초연되어 또 다른 연극 미학을 소개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해방과 분단 형성 시기에는, 좌우 이데올로기 사이의 갈등, 한국 전쟁, 민족문화의 부흥 노력 등으로 혼미의 국면을 맞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경향극 성향의 번역극들이 많이 공연되었다. 프랑스 실존주의극인 사르트르(J-P. Sartre)의 <붉은 장갑>과 <임자 없는 무덤>, 살라크루(A. Salacrou)의 <신만은 알고 있었다>와 독일의 카이저(G. Kaiser)의 <칼레 시민>, 주더만(H. Sudermann)의 <고향>, 클라이스트(H. von Kleist)의 <깨어진 항아리>등이 그러한 경향을 나타낸 번역극들이다. 한편, 순수한 연극적 관심에서 프랑스 낭만주의극의 선언문인 위고(V. Hugo)의 <에르나니>가 무대에 올랐고, 이오네스코(Ionesco)의 <수업>(1960)이 초연되어, 프랑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부조리극을 선보였다. 노르웨이 입센의 리얼리즘극은 여전히 선호되어 <유령>과 <민중의 적>이 소개되고, 이탈리아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도 초연되었다. 군정체제와 산업화 시대로 진입하는 1960~70년대, 연극계에서는 드라마센터의 개관(1962)을 비롯하여 여러 주요한 극단들이 창단되고 소극장 등 상설 무대가 확보되어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소극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또한, 대부분이 대학생들인 관객들의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그리고 서양 연극에 대한 호기심이 결합하여 1960~70년대 한국연극계는 번역극 공연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프랑스 극작가 아누이(J. Anouilh)의 경향극 <안티고네>는 당시의 정치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관심을 끌었고, 독일 보르헤르트(W. Borchert)의 <문밖에서>와 뷔히너(G. B&uuml;chner)의 <보이체크>도 사회적 부조리를 조명한 공연이었다. 한편, 이 기간은 예술적 가치와 연극성이 뛰어난 서양 극작품들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졌다. 그런 맥락에서, 프랑스의 다양한 연극미학에 속하는 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라신(J. Racine)의 고전 비극 <페드르>, 주네(J. Genet)의 잔혹극과 제의연극의 형태를 결합한 <하녀들>과 <엄중한 감시>, 보마르셰(Beaumarchais)의 부르주아 드라마 <휘가로의 결혼>, 파뇰(Pagnol)의 서정적 불르바르극 <화니>, 아누이의 경쾌한 불르바르극 <도적들의 무도회>, 아라발(F. Arrabal)의 서정적 시극 <환도와 리스> 등이 무대에 올랐다. 1972년 개최된 ‘몰리에르의 탄생 350주년 기념 40일간의 몰리에르 축전’은 몰리에르 희극이 한국 관객과 밀착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도 큰 호응을 얻었다. 독일 연극도 고전주의 작가에서부터 근·현대 작가의 다양한 극작품들이 공연되었다. 이 기간, 보르헤르트(W. Borchert)의 <문밖에서>, 뷔히너(G. B&uuml;chner)의 <보이체크>, 카프카(F. Kafka)의 <빨간 피터의 고백>, 한트케(P.Handke)의 <관객모독>, 뒤렌마트(F.D&uuml;rrenmatt)의 <노부인의 방문>, 베데킨트(F. Wedekind)의 <루루>, 바이스(P. Weiss)의 <마라/사드> 등 중요한 작품들이 공연되어 한국연극에 큰 영향을 끼친다. 러시아 연극의 공연은 여전히 저조해서 대부분 이미 공연된 작품들의 재공연이었다. 다만, 이 시기에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 <갈매기>, <세 자매>, <바냐 아저씨>가 소개됨으로써 체호프 연극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기간, 유럽의 여러 다른 국가들의 극작품들이 조금씩 소개되면서 번역극의 지평이 넓어지기 시작한다. 스위스 현대작가 프리쉬(M.Frisch)의 <만리장성>과 이스라엘 작가 베른슈타인의 <키부츠의 처녀>가 초연되고, 전문극단(신협)에 의하여 그리스 고전비극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이 공연되었다. 스페인 연극은 퀸테로 형제(A. Quinteros)의 감상주의와 파르스가 결합된 <햇빛 밝은 아침>, 가르시아 로르카(Garcia Lorca)의 초현실주의적 시극 <피의 결혼>이 무대에 올랐고, 스웨덴의 스트린드베리(Strindberg)의 자연주의와 표현주의가 결합된 작품 <줄리양>이 공연되었다. 폴란드 연극은 므로체크(S. Mrozek)의 <탱고>와 실바누스(Sylvanus)의 <어느 유태인 학살의 회상>이 강한 정치 담론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탈리아 연극은 골도니(C. Goldoni)의 <한꺼번에 두 주인을>과 스칼페타(Scarpetta)의 <따라지의 향연>이 공연되었다. 1980년대, 한국사회는 여전히 계속된 군부체제와 문화적 전환기에 들어서며, 번역극은 전반적으로 퇴조 현상을 보였지만, 뚜렷한 세 갈래 방향에서 작품 선정이 이루어진다. 즉, 예술적 가치와 연극성이 뛰어난 작품의 공연, 정치-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하는 저항 담론으로서의 연극, 관객의 취향과 흥행을 염두에 둔 재미있는 대중극의 공연이 그것이다. 프랑스 연극은 몰리에르의 희극과 보마르셰의 부르주아 드라마,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주네의 <검은 몸들>과 <발코니>, 자리(A. Jarry)의 아방가르드극 <위뷔왕>이 그 예술적 가치와 연극성에서 여전히 선호되었다. 1980년대 초, 집중적으로 공연된 <건축사와 아씨리아 황제>를 위시한 아라발의 공포극들은 당시의 암울한 정치현상 및 현대문명에 대한 역전의 저항 담론으로 읽을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독일의 카프카, 한트케, 뒤렌마트의 작품들과 하우프트만(G. Hauptmann)의 <엘가>, 뷔히너(G. B&uuml;ner)의 <당통의 죽음>, 괴테(Goethe)의 <파우스트> 등이 여러 차례 재공연되었고, 러시아 연극은 주로 체호프의 작품들, 그리스 연극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이 재공연되었다. 이탈리아 연극으로는 유고베티(U. Betti)의 <백양섬의 욕망>, 다리오 포(Dario Fo)의 <안 내놔? 못 내놔?>가 소개되어 관객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폴란드의 연극들도 대부분 이미 소개된 작품들의 재공연이었다. 한편, 흥행을 염두에 둔 대중극으로는 프랑스의 카몰레티(M.Camoletti)의 <보잉-보잉>, 토마의 <그 여자 사람 잡네>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보봐르(S. de Beauvoir)의 소설을 각색한 <위기의 여자>는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성연극의 붐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는 민주화·국제화 시대로 들어서는 시기이며, 연극의 국제교류도 활발해지고, 1987년 동유럽권 작가의 작품이 해금되자 레퍼토리 선정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서구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이 국내 무대에 올려짐으로써 극형태의 다양성을 띠게 된다. 이 기간, 프랑스 극작가 토마와 카몰레티의 대중적 불르바르극 작품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여러 번 재공연되었다. 그러나 몰리에르, 이오네스코, 카뮈, 아누이, 주네 등의 작품들도 선호되었던 점은 이제 관객들의 취향과 선택도 다양해졌음을 말해주며, 1990년, 아르토(A. Artaud)의 <쌍시>의 초연은 한국에 잔혹극 무대를 소개하는 계기가 된다. 독일 연극은 브레히트(B. Brecht)의 서사극으로 집중된다. 이미 1970년대부터 프라이에 뷔네에서 브레히트의 극작품을 공연한 바 있지만 대부분 원어극이었고, 번역극은 1980년 <세추안의 선인>이 공연된 후, <서푼짜리 오페라>, <코카서스의 하얀 동그라미 재판>, <한밤의 북소리>, <주인 푼틸라와 하인 맛티> 등이 공연(혹은 재공연)되어 브레히트 연극에 대한 소개와 서사극 연구가 열기를 띤다. 그 밖에, 뷔히너, 뒤렌마트, 한트케, 보르헤르트의 기존의 작품들이 꾸준히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러시아 연극은 체호프의 <갈매기>가 여러 번 재공연되었고, 80년대 말 국제관계 개방화 정책에 힘입어 현대 작품들도 공연되었는데, 구바리예프의 <아! 체르노빌>, 아르브조프의 <레닌그라드에 피다> 등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연극은 다리오 포의 <안 내놔? 못 내놔!>가 여전히 인기를 끌어 재공연되었고,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 <Mr. 맥킨토>와 <오픈 커플>도 소개되었다. 스페인 연극은, 스칼페타(E. Scarpetta)의 <따라지의 항연>과 가르시아 로르카의 <피의 결혼>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폴란드 연극은 므로체크(S. Mrozek)의 <탱고>와 그와브스키의 <찌꺼기들>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재공연 되었다. 그리스 연극은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아파트의 류시스트라데>가 초연되었다. 신현숙(덕성여대 불문학과 교수/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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