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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의 태동 - 창극과 악극

우리 나라 근대의 음악극은 1950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형태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대에 작품 수에서나 대중성에서나 우위에 있는 음악극은 창극(국극이라고도 함)이었다. 한 명의 소리꾼(창자, 唱者)이 고수 한 명의 북 장단에 맞춰 줄거리가 있는 일관된 이야기를 노래와 극적 연기로 엮어가는 판소리가, 연극의 형태로 분화하기 시작한 것은 1902년 협률사의 공연으로부터이다. 조선조 말에 이르러 대중성과 작품성에서 꽃을 피웠던 판소리는 일제시대 내내 전 계층에게 사랑받는 대중적인 공연물이었고, 그에 기반한 창극 역시 매우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인직의 신소설이자 최초의 신연극으로 기록되는 <은세계>에 판소리 소리꾼들이 출연하였고 소설 <은세계>의 전반부(일명 ‘최병도 타령’)가 판소리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연극 <은세계>도 창극적 요소가 강한 창작극이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1934년 전국의 명창들의 결집체인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되면서 창극은 한층 발전하며 대중화되었고, 이후 <춘향전>, <심청전>처럼 현전판소리 중심의 작품은 물론, <유충열전> 등 창작창극도 공연되었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창극은 더욱 더 대중화되어 모든 출연자를 여성이 맡은 여성국극이 출연하면서 화려한 상업적 연극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창극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적 인기를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창극 이외의 음악극, 즉 서양음악에 바탕을 둔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을 통칭하여 가극 혹은 악극이라 하였다. 가극은 오페라로부터 경가극을 모두 포함하는 말로 쓰였으며, 악극이라는 용어는 유행가와 신파극을 결합한 좀더 대중적인 형태의 음악극에 많이 쓰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20년대 말에 초기적 모습을 보이던 가극·악극은, 동양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배구자악극단을 거쳐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어 송영, 이서구, 서항석 등 쟁쟁한 극작가와 안기영 등 최고의 음악인이 결합한 악극을 생산하게 된다. 해방 후 남한에서는 이러한 경향은, 음악계를 중심으로 서구 19세기 오페라를 전범으로 하는 흐름(<춘희>와 현제명 작곡 <춘향전> 등)과, 대중가요와 신파극을 결합한 형태인 대중적인 악극으로 양분되게 되고, 후자는 1960년대에 들어서 대중성을 상실하게 퇴락한다. 그에 비해 북한은 안기영 등의 월북으로 일제시대의 가극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다. 이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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