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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덤(3001103) 크게보기 3D 뷰어
독무덤(3001103)
국적/시대
한국/원삼국
재질
토제/연질
용도
옹관
소장처
전주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독무덤은 크고 작은 항아리 또는 독 두 개를 맞붙여서 관으로 쓰는 무덤양식으로 옹관묘라고도 한다. 독무덤의 기원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 중국에서는 주(周)와 한(漢)나라의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옹관 사용이 점점 쇠퇴하거나 소멸되었고, 6세기의 『송서(宋書)』에는 ‘옹관은 동호(東胡)의 풍습’이라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의 독무덤은 청동기시대부터 남부 지역에서 활발히 사용된 토착적인 전통이 강한 편이다. 독무덤이 발견된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으로는 평안남도 강서 태성리(台城里), 황해도 안악 복사리(伏獅里), 은율 운성리(雲城里), 신천 명사리(明沙里), 공주 남산리, 광주(光州) 신창동(新昌洞), 김해 회현리 와 지내동, 부산광역시 낙민동 동래 패총 등이 있다. 이러한 독무덤은 역사시대에 이르면 하나의 고분형식으로서 조성되었다. 신라지역에서는 경주 조양동과 인왕동, 황남동, 가야지역에서는 김해 예안리, 부산광역시 오륜대와 괴정동, 대구광역시 복현동, 경산 내리리와 임당리, 백제 지역에서는 부여 송국리와 염창리, 서울특별시 석촌동과 가락동, 남원 두락리, 고창 신월리, 공주 봉정리, 나주 반남면 일대, 영암 내동리, 함평 마산리 등 여러 유적지에서 발굴, 조사되었다. 특히 영산강 유역의 독무덤은 다른 지방의 고분들과는 달리 독자성이 뚜렷하고 고도의 토기 제작기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특수한 대형의 전용(專用) 옹관을 주된 매장시설로 하고 있어 백제의 지방토착세력 및 마한 토착집단과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독무덤이 삼국시대를 지나서도 계속 채택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생활용기로 오랫동안 쓰였던 옹기로 된 소형 독무덤이 조사되기도 하여 어린아이의 주검을 매장하는 데 독무덤이 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옹관은 크게 하나로 된 단옹(單甕)과 2개가 합쳐진 합구식(合口式) 옹관으로 구별된다. 합구식 옹관은 청동기시대 후반에 출현하여 원삼국시대에 주류를 이룬다. 이 독무덤은 합구식 소형옹관으로 유아용이나 재장용(再葬用)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왼쪽의 것은 동부(胴部)에 승석문(繩席文)이 시문되어 있으며, 기면(器面)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거친 편이다. 오른쪽의 것은 동부에 격자(格子)문양을 순서 있게 타날(打捺)한 것으로 보이며, 격자문양의 한단위도 비교적 큰 편이다.
활용설명
청동기시대부터 철기 시대까지 널리 쓰였던 무덤인 독무덤을 전시하여 고대인들의 장례의식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또한 독무덤의 분포도를 통해 무덤 양식이 확대되는 양상을 알 수 있고 대규모 독무덤이 분포하는 영산강유역의 지역적인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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